21개조 요구에 항의해 외교총장을 그만두고 두 차례 총리를 지낸 외교관
항저우 첸탕에서 태어나 청의 프랑스·독일 주재 공사를 거쳐 1909년 산둥 순무가 되었다. 입헌 정부를 지지해 내각제 도입을 건의했고, 1911년 산둥의 독립을 승인했다가 위안스카이가 권력을 잡자 철회하고 물러났다. 1913년 9월 슝시링 내각의 외교총장이 되어 외몽골에 대한 중국의 종주권과 외몽골 자치를 맞바꾸는 협정을 러시아와 맺었다. 1914년 2월부터 5월까지 총리를 대리했고, 1915년 1월 일본의 21개조 요구에 항의해 외교총장을 그만두었다. 그 뒤 경제 관직을 맡다가 1924년 1월 다시 총리가 되었으나 재정총장과 부딪쳐 7월에 물러났다. 1928년 다롄으로 은퇴했고 1931년 지병으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09–1911
청 왕조 국가기관산둥 순무
정부·행정 -
1913–1915
북양정부·군벌외교총장대표
외교·국제활동 -
1914
북양정부·군벌국무총리 대리중국 국가원수 · 정부 수반 · 당 지도자
정치·당 지도 -
1924
북양정부·군벌국무총리중국 국가원수 · 정부 수반 · 당 지도자
정치·당 지도
경력 연표
- 1902프랑스 주재 공사
- 1907독일 주재 공사
- 1909.06–1911산둥 순무
- 1913.09.11–1915.01외교총장
- 1914.02.12–05.01국무총리 대리
- 1916.01심계원장
- 1916.04재정총장
- 1924.01.12–07.02국무총리
- 1926중법대학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