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스카이 정부의 진보당 내각을 이끌고 물러난 뒤 자선 사업에 힘쓴 정치가
후난 펑황에서 태어난 학자 출신으로, 중화민국이 서자 통일당과 공화당을 거쳐 진보당의 당원이 되었다. 1912년 탕사오이 내각의 재정총장을 지냈고, 1913년 러허 도통을 맡았다. 1913년 7월 위안스카이에게 국무총리 겸 재정총장으로 임명되었으며, 국민당 해산과 국회 해산 명령에 부서했다. 통치 방식을 두고 위안과 사이가 벌어지고 러허 행궁 보물 분실 사건으로 공격을 받자 1914년 2월 물러났다. 정계를 떠난 뒤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교육·자선 기관을 운영했고, 1937년 상하이 전투 때 피란민을 도왔다. 상하이가 함락된 뒤 홍콩으로 옮겨 그해 12월 그곳에서 죽었다.
다른 이름: 웅희령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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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
북양정부·군벌재정총장
경제·재정·계획 -
1913–1914
북양정부·군벌국무총리중국 국가원수 · 정부 수반 · 당 지도자대표
정치·당 지도
경력 연표
- 1912.04탕사오이 내각 재정총장
- 1913러허 도통
- 1913.07.31–1914.02.12국무총리 겸 재정총장
- 1937상하이 전투 피란민 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