슝시링

熊希齡
북양정부·군벌 자유주의·공화주의 중국 중국 1870–1937 ○ 홍콩에서 사망

위안스카이 정부의 진보당 내각을 이끌고 물러난 뒤 자선 사업에 힘쓴 정치가

후난 펑황에서 태어난 학자 출신으로, 중화민국이 서자 통일당과 공화당을 거쳐 진보당의 당원이 되었다. 1912년 탕사오이 내각의 재정총장을 지냈고, 1913년 러허 도통을 맡았다. 1913년 7월 위안스카이에게 국무총리 겸 재정총장으로 임명되었으며, 국민당 해산과 국회 해산 명령에 부서했다. 통치 방식을 두고 위안과 사이가 벌어지고 러허 행궁 보물 분실 사건으로 공격을 받자 1914년 2월 물러났다. 정계를 떠난 뒤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교육·자선 기관을 운영했고, 1937년 상하이 전투 때 피란민을 도왔다. 상하이가 함락된 뒤 홍콩으로 옮겨 그해 12월 그곳에서 죽었다.

다른 이름: 웅희령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