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웨이쥔

顧維鈞
북양정부·군벌 중국 중국 1888–1985 ○ 자연사

파리 강화회의에서 산둥 반환을 요구한 외교관, 북양 정부와 국민정부의 대사

상하이 출신으로 컬럼비아대학에서 국제법·외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12년 귀국해 위안스카이의 외교 비서가 되었고, 1919년 루쩡샹이 이끈 파리 강화회의 대표단의 일원으로 산둥 반환을 요구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산둥은 공자가 태어난 땅이라 기독교도가 예루살렘을 내줄 수 없듯 내줄 수 없다는 그의 호소는 유명하다. 이듬해 주영 공사가 되었고, 1922~1927년 베이징 정부에서 외교총장·재정총장, 국무총리 대리와 대총통 대리를 지냈다. 북벌 뒤 국민정부에 들어가 1931년 국제연맹에서 만주 침략에 항의했고, 2차 세계대전 동안 프랑스·영국 대사, 1945년 유엔 헌장 서명 대표, 1946~1956년 주미 대사, 뒤에 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냈다.

다른 이름: 웰링턴 쿠 · 고유균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