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윈펑

靳雲鵬
북양정부·군벌 중국 중국 1877–1951 ○ 톈진에서 사망

돤치루이의 4대 금강에서 직계·펑톈파의 지지를 받는 총리로 돌아선 베이양 장군

산둥 쩌우현 출신으로 톈진 무비학당을 나와 베이양 상비군 참모가 되었고, 윈난 신군의 총참의를 지내다 1911년 쿤밍 봉기 때 빠져나왔다. 1914년 산둥 장군이 되었고 돤치루이 밑의 4대 금강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1918년 일본과 중일 육군 공동방적 군사협정을 맺었고, 1919년 육군총장을 거쳐 9월 국무총리가 되었다. 직계와 펑톈파의 지지로 총리가 되었지만 안푸 구락부와 갈라섰고, 재정난 속에 1920년 5월 물러났다. 직환전쟁에서 안후이파가 진 뒤 8월 다시 총리가 되었으나 재정이 바닥나 1921년 12월 량스이에게 자리를 넘겼다. 이후 톈진에서 광산·방직 사업을 벌였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뒤에도 톈진에 머물다 1951년 죽었다.

다른 이름: 근운붕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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