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필리프의 셋째 아들로 나폴레옹의 유해를 옮겨 오고 1851년 대통령 출마를 선언한 해군 제독
1818년 루이 필리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해군 장교가 되었다. 1840년 프리깃함 벨풀호를 이끌고 세인트헬레나에서 나폴레옹의 유해를 프랑스로 옮겨 왔고, 1844년 모로코 원정에서 탕헤르를 포격해 해군 중장이 되었다. 브라질 황제 페드루 2세의 누이와 결혼했다. 1848년 아버지가 쫓겨나자 영국으로 망명했다. 1851년 이듬해 대통령 선거에 나서겠다고 밝혀 왕정복고의 길을 닦으려 했으나 12월 2일 쿠데타로 무산되었다. 미국 남북전쟁 때 1861~1862년 북군 매클렐런 장군의 참모로 일했고, 1870년에는 가명으로 프랑스군에 들어가 싸웠다. 1871~1876년 오트마른 도 국민의회 의원을 지냈다.
다른 이름: 주앵빌 공 · 프랑수아 페르디낭 필리프 루이 마리 도를레앙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36해군 중위 임관
- 1838산후안데울루아 포격, 코르베트함 크레올 지휘
- 1840나폴레옹 유해 송환
- 1844모로코 원정, 해군 중장
- 1848영국 망명
- 1851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
- 1861–1862북군 매클렐런 장군 참모
- 1871–1876오트마른 도 국민의회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