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모함 시대의 작전 지휘관
그는 산호해에서 포트모르즈비 침공 함대를 물러나게 했다.
프랭크 잭 플레처는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에서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지휘한 미국 해군 제독이다. 그는 산호해에서 일본의 포트모르즈비 진격을 저지하고, 미드웨이에서는 전술 지휘관으로 일본 항공모함 네 척의 격침에 관여했다. 그의 신중한 항공모함 운용은 전력을 보존했지만, 과달카날에서 함대 철수를 둘러싼 논쟁도 남겼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02–1906미 해군사관학교 생도
- 1914베라크루스 작전 참가, 명예훈장 수훈
- 1918–1919구축함 벤험·그리들리 함장
- 1933–1936해군장관 보좌관
- 1939–1941순양함 사단 지휘관, 소장
- 1942.01–05제17기동부대 지휘관, 산호해 해전
- 1942.06미드웨이 해전 전술 지휘관
- 1942–1945알래스카 해역 미 해군 지휘관
관련 역사 사건
과달카날 철수 논쟁
프랭크 잭 플레처의 지휘 경력에서 가장 논쟁적인 장면은 과달카날 상륙 직후다. 1942년 8월 초 미 제1해병사단의 툴라기·과달카날 상륙을 엄호하던 플레처는 항공기 손실과 연료 부족, 그리고 육상기지에서 뜨는 일본 쌍발 뇌격기에 귀중한 항모를 노출시키고 싶지 않다는 판단으로 8월 8일 저녁 항모를 철수시키도록 총사령관 로버트 고믈리에게 요청해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그 철수는 다음 날 새벽 벌어진 사보섬 해전을 그대로 열어주었다. 미카와 곤이치 중장의 일본 순양함 부대는 기습 야간 전투로 호주 순양함 1척과 미국 순양함 3척을 격침했고, 항공엄호를 잃은 수송선단도 예정보다 일찍 물러나 해병대에 중화기·탄약·의료품·식량이 제대로 양륙되지 못했다. 해병대는 이를 '해군의 배신'이라 불렀고, 지상 지휘관 알렉산더 밴더그리프트 장군은 격렬히 항의했다. 이후 해군사학자 존 런스트롬은 플레처가 억울한 오명을 썼다고 주장하며, 당시 미국이 가진 소수의 항공모함을 보존하려던 그의 신중함이 결국 일본 항모 여섯 척을 격침시킨 실적의 바탕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이 결정은 사실상 그의 현역 경력을 끝냈다. 8월 말 기함 사라토가가 일본 잠수함의 어뢰에 피격되자 에르네스트 킹 해군작전부장의 비판까지 겹쳐 그는 지휘에서 교체되어 알래스카 해역으로 옮겨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