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의 행동을 국제적 상징으로 만든 공군 조종사
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비행기를 알리는 방법을 묻자 날개를 흔들겠다고 약속했다.
게일 할보르센은 미국 공군 조종사로, 1948년 베를린 공수작전에 참여해 서베를린의 생존을 뒷받침한 수송 임무를 수행했다. 템펠호프 공항 철책가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껌을 건넨 뒤 손수건 낙하산으로 사탕을 떨어뜨린 일은 Operation Little Vittles로 확대되어 공수작전의 물자 수송에 인간적 얼굴을 더했다. 이 자발적 행동은 미군의 규정과 냉전 선전의 경계에 놓였지만, 베를린 주민과 미국 어린이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며 서방의 정치적 호소력을 키웠다. 그는 이후에도 공군의 항공·우주 개발과 베를린 템펠호프 지휘를 맡았고 1974년 대령으로 퇴역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42미 육군항공대 입대, 조종사 훈련
- 1948–1949베를린 공수작전 C-54 조종사, Operation Little Vittles 창시
- 1952–1957라이트 항공개발센터 항공화물기 연구개발 담당
- 1958–1962공군 체계사령부 우주체계 부문 근무
- 1965–1969공군 본부 우주·기술국, 유인 재사용 우주선 계획 담당
- 1970–1972베를린 템펠호프 공항 제7350 공군기지단 지휘관
- 1974미 공군 대령으로 퇴역
관련 역사 사건
사탕 낙하의 제도화와 그 이후
할보르센이 시작한 사탕 낙하는 애초에 상부의 허가 없이 이루어졌다. 그는 같은 부대 조종사·정비사와 사탕 배급량을 모아 손수건 낙하산 세 개를 만들어 물자 투하 임무에 곁들였고, 이 개인적 관행이 몇 주 동안 반복되면서 템펠호프 철책 앞에 모이는 아이들의 수가 매번 늘어났다. 이 소식이 공수작전 사령관 윌리엄 H. 터너 중장에게 전해지자 그는 이를 정식 작전으로 확대할 것을 명령했고, 1948년 9월 22일 리틀 비틀스가 공식 작전이 되었다. 명칭은 공수작전의 이름인 '비틀스'(Operation Vittles)를 비튼 말이었다.
제도화는 병력과 민간의 참여를 끌어들였다. 지원은 처음에는 동료 조종사들 사이에서, 다음에는 부대 전체로 번졌고, 미국 전역의 어린이와 제과업체가 사탕을 보내기 시작했다. 1948년 11월 무렵 할보르센 혼자서는 밀려드는 사탕과 손수건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메사추세츠주 치코피의 대학생 메리 C. 코너스가 이 전국적 사업을 맡아 전국제과협회와 함께 사탕을 준비하고 손수건을 묶는 일을 조직했다. 이때부터 리틀 비틀스의 조종사들은 할보르센을 포함한 여러 명으로 늘어나 사탕을 이틀에 한 번꼴로 투하했다. 작전은 1948년 9월 22일부터 1949년 5월 13일까지 이어졌고, 1949년 1월 할보르센이 귀국한 뒤에는 동료인 로런스 캐스키 대위가 지휘를 이어받았다. 모두 합쳐 250,000개가 넘는 낙하산으로 23톤 이상의 사탕이 투하된 것으로 추산된다.
이 사탕 낙하는 전후 서독과 독일인들의 기억 속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도시들에 대한 폭격 작전에 참여했던 같은 조종사들이 전후에는 아이들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는 증언이 남아 있다. 1948년 할보르센에게 초콜릿을 보내달라는 편지를 썼던 메르체데스 빌트는 75년 뒤 그가 '그 어린 나이에 나에게 아버지가 되어 주었다'고 회고했다. 그녀는 전후 세대 아이들이 대부분 아버지 없이 자랐고 조종사들과 그 동료들이 특히 아이들에게 역할 모델이었다고 덧붙였다. 2022년 할보르센이 사망한 뒤 베를린 시장 프란치스카 기페이는 '할보르센의 깊이 인간적인 행동은 결코 잊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할보르센은 리틀 비틀스를 단순한 재현 행사로 남겨두지 않았다. 그는 전쟁이 끝난 나라가 아니라 여전히 고통받는 지역에서 사탕 낙하를 인도적 목적으로 활용하자고 주장했다. 1994년에는 미 공군을 설득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수백 개의 초콜릿 바를 투하했고, 1999년에는 코소보 상공에서 더 큰 규모의 낙하를 계획해 실행했다. 이후 일본·괌·알바니아와 미국 각지에서도 낙하가 이루어졌다. 2003년과 2004년에는 바그다드 상공에서의 사탕 낙하를 인도적 임무로 제안하며 이를 '희망의 한 줄기, 미국의 누군가가 염려하고 있다는 표시'라고 설명했다. 그는 2019년 12월 17일 C-54 '스피릿 오브 프리덤'을 마지막으로 조종할 때까지, 99세 생일 직후까지 이 낙하 비행에 참여했다. 냉전 초기의 무단 행동에서 출발한 관행이 그의 생애 내내 국제적 인도주의 활동으로 이어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