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즈네프에게 직언을 멈추지 않았던 러시아 공화국 수상
«보로노프는 무뚝뚝한 사내였고, 브레즈네프의 면전에서도 생각하는 바를 모두 말했다.» — 미하일 스미르튜코프, 소련 각료회의 사무국장
전기기사 출신으로 러시아 공화국 수상과 정치국원까지 오른 실무형 당료. 코시긴 개혁을 지지하고 농업 자율작업조 '즈베노'를 주창했으나 브레즈네프에게 막혀 1973년 정치국에서 물러났다.
경력 연표
- 1929–37전기기사·작업반장으로 노동, 톰스크 공업대학 졸업
- 1937–48프로코피옙스크·치타에서 당 선전·조직 책임자
- 1948–55치타 주당위 제1서기
- 1955–57소련 농업부 차관
- 1957–61오렌부르크(치칼로프) 주당위 제1서기
- 1961–73정치국(간사국) 위원: 1961년 후보, 1961–73년 정위원
- 1962–71러시아공화국 각료회의 의장(수상)
- 1971–73소련 인민통제위원회 의장
- 1973농업 개혁안('즈베노')이 브레즈네프에게 거부되어 정치국에서 퇴진
관련 역사 사건
흐루쇼프에서 브레즈네프까지: 개혁파 정치국원의 고립
보로노프는 흐루쇼프의 농업 모험주의에 반대하면서도 코시긴의 1965년 경제개혁을 지지한 실용적 개혁파였다. 1964년 10월 흐루쇼프 축출을 결정한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보로노프는 "3년 반 동안 한 번도 내 의견을 말할 수 없었다. 당신은 자신이 농업 전문가라고 생각하지만, 여기 당신 편은 아무도 없다"며 흐루쇼프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나 새 서기장 브레즈네프와의 관계도 순탄치 않았다. 보로노프는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결정에 반대한 몇 안 되는 정치국원 중 하나였으며, 콜호스 내부에 자율적 소규모 작업조(즈베노)를 도입해 노동 생산성을 높이자는 구상을 밀고 나갔다. 브레즈네프는 이 모든 제안을 중앙집권적 통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1971년 러시아공화국 수상직에서 물러나 인민통제위원회라는 한직으로 밀려났고, 1973년 4월 정치국에서 완전히 퇴진했다. 그는 소련 지도부 내에서 끝까지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았던 마지막 실무형 개혁파 중 한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