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수석 이념 감독관, 철학 논쟁에 무너지다
1947년 6월 철학 논쟁장. 즈다노프가 500명 앞에서 묻는다: "이 책에서 부르주아 철학자들이 서로를 깨물어먹는 장면은 묘사했으면서, 마르크스주의 혁명이 어떻게 그 모두를 쓸어버렸는지는 어디 있습니까?" 알렉산드로프는 침묵한다.
스탈린 시대 수석 철학 관료. 고아에서 선전선동국장까지 올라 『서유럽철학사』로 스탈린상을 받았으나, 1947년 철학 논쟁으로 실각했다. 문화장관도 성추문으로 1년 만에 민스크로 좌천되었다.
경력 연표
- 1908–1920s상트페테르부르크 출생, 전기기사 아들. 내전기 고아가 되어 보리소글렙스크 고아원에서 성장
- 1930–1935모스크바 철학문학사연구소(МИФЛИ) 졸업 및 아스피란투라 수료
- 1935–1939МИФЛИ 교수, 철학사 전공. 아리스토텔레스 연구로 박사학위
- 1939중앙위 선전선동국 부국장 겸 고등당학교(ВПШ) 교장
- 1940–1947중앙위 선전선동국장: 전쟁기 선전·대외이념공세·전후 문화통제 주도
- 1943, 1946『철학사』3권과 『서유럽철학사』로 스탈린상 2회 수상
- 1946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 선출. 스탈린 전기(2판) 공동 집필
- 19476월 철학 논쟁: 스탈린·즈다노프의 비판. 9월 선전선동국장 해임, 철학연구소장으로 전출
- 1954–1955소련 문화장관 임명. 1년 만에 「검투사 사건」 성추문으로 파면
- 1955–1961민스크의 벨라루스 과학아카데미 철학법률연구소 분과장으로 좌천, 말년을 보냄
관련 역사 사건
1946년 문화 대숙청: 아흐마토바·조셴코 공격
알렉산드로프의 선전선동국장 재임 중 가장 큰 흔적으로 남은 것은 1946년 8월의 문화계 대숙청이다. 즈다노프가 정치적 얼굴이었다면, 알렉산드로프는 그 공격의 실무를 준비한 관료였다.
1946년 8월 7일, 알렉산드로프와 부국장 알렉산드르 예골린은 즈다노프에게 「'즈베즈다' 및 '레닌그라드' 잡지의 불만족스러운 상태에 관하여」라는 보고서를 올렸다. 이들은 레닌그라드에서 발행되는 두 문예지에 2년간 게재된 작품들을 분석해 '이데올로기적으로 해롭고 예술적으로 극히 빈약한 작품들'의 목록을 작성했다.
아흐마토바의 시에 대한 알렉산드로프의 공격은 집요했다. 그는 1926년에 쓰인 한 비평에서 '반은 수녀, 반은 매춘부'라는 구절을 직접 발굴해 보고서에 포함시켰다. 즈다노프는 이 구절을 그대로 차용해 8월 14일 레닌그라드 작가대회에서 아흐마토바를 공개 모욕했고, 곧 그녀는 작가동맹에서 제명되어 생계 수단을 잃었다.
조셴코에 대해서도 알렉산드로프는 보고서에서 "조셴코의 묘사 속에서 소비에트 사람들은 극도로 원시적이고 한계 지어진 존재로 나타난다. 저자는 우리 인민을 바보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적었다. 두 작가에 대한 공격은 전후 소련 문화계에 대한 스탈린주의적 통제 강화의 신호탄이었고, 이후 음악·영화·철학으로 숙청이 확대되었다.
이듬해 알렉산드로프 자신도 철학 논쟁에서 같은 방식으로 공격당해 실각했다는 점은 그 시대 이념 관료들의 순환적 운명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