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기 표도로비치 알렉산드로프

Георгий Фёдорович Александров
소련 러시아 1908–1961 ↓ 좌천 1955

스탈린의 수석 이념 감독관, 철학 논쟁에 무너지다

1947년 6월 철학 논쟁장. 즈다노프가 500명 앞에서 묻는다: "이 책에서 부르주아 철학자들이 서로를 깨물어먹는 장면은 묘사했으면서, 마르크스주의 혁명이 어떻게 그 모두를 쓸어버렸는지는 어디 있습니까?" 알렉산드로프는 침묵한다.

스탈린 시대 수석 철학 관료. 고아에서 선전선동국장까지 올라 『서유럽철학사』로 스탈린상을 받았으나, 1947년 철학 논쟁으로 실각했다. 문화장관도 성추문으로 1년 만에 민스크로 좌천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46년 문화 대숙청: 아흐마토바·조셴코 공격

알렉산드로프의 선전선동국장 재임 중 가장 큰 흔적으로 남은 것은 1946년 8월의 문화계 대숙청이다. 즈다노프가 정치적 얼굴이었다면, 알렉산드로프는 그 공격의 실무를 준비한 관료였다.

1946년 8월 7일, 알렉산드로프와 부국장 알렉산드르 예골린은 즈다노프에게 「'즈베즈다' 및 '레닌그라드' 잡지의 불만족스러운 상태에 관하여」라는 보고서를 올렸다. 이들은 레닌그라드에서 발행되는 두 문예지에 2년간 게재된 작품들을 분석해 '이데올로기적으로 해롭고 예술적으로 극히 빈약한 작품들'의 목록을 작성했다.

아흐마토바의 시에 대한 알렉산드로프의 공격은 집요했다. 그는 1926년에 쓰인 한 비평에서 '반은 수녀, 반은 매춘부'라는 구절을 직접 발굴해 보고서에 포함시켰다. 즈다노프는 이 구절을 그대로 차용해 8월 14일 레닌그라드 작가대회에서 아흐마토바를 공개 모욕했고, 곧 그녀는 작가동맹에서 제명되어 생계 수단을 잃었다.

조셴코에 대해서도 알렉산드로프는 보고서에서 "조셴코의 묘사 속에서 소비에트 사람들은 극도로 원시적이고 한계 지어진 존재로 나타난다. 저자는 우리 인민을 바보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적었다. 두 작가에 대한 공격은 전후 소련 문화계에 대한 스탈린주의적 통제 강화의 신호탄이었고, 이후 음악·영화·철학으로 숙청이 확대되었다.

이듬해 알렉산드로프 자신도 철학 논쟁에서 같은 방식으로 공격당해 실각했다는 점은 그 시대 이념 관료들의 순환적 운명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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