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기 필리포비치 바이두코프

Георгий Филиппович Байдук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인 1907–1994 ○ 자연사

치칼로프와 북극을 넘은 부조종사, 소련 방공무기 체계를 구축한 조달 사령관

1937년 6월 20일, 북극 상공에서 치칼로프가 저산소증으로 코피를 흘리자 바이두코프가 조종간을 잡았다. 그는 마지막 13시간을 홀로 비행해 ANT-25기를 밴쿠버 피어슨 비행장에 내려놓았다.

소련의 시험비행사, 군사 지휘관, 그리고 소비에트 훈장 최다 수훈자(21개). 1936년과 1937년 발레리 치칼로프의 ANT-25기 부조종사로서 모스크바–우드 섬 및 모스크바–북극–밴쿠버 무착륙 비행에 참여해 소비에트 연방영웅 칭호를 받았다. 위대한 조국전쟁에서는 항공사단과 항공군단을 지휘했고, 전후 민간항공단 총국장(1947–1949)을 지냈다. 1957년부터 1972년까지 국방부 제4총국장으로서 방공군(PVO)의 무기 조달을 총괄하며 소련 방공무기 체계 건설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작가동맹 회원으로 치칼로프 전기를 비롯한 여러 저서를 남겼으며, 1988년까지 PVO 최고사령관 과학고문으로 복무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타리슈타 분기점의 고아에서 비행사로

게오르기 필리포비치 바이두코프는 1907년 옴스크 철도 연선의 타리슈타 분기점(현 노보시비르스크주 타타르스키군)에서 철도원 가정에 태어났다. 출생일 자체는 사료마다 엇갈린다. 러시아어 위키백과는 5월 13일(구력)과 26일을, 영문 위키백과는 5월 13일(구력 4월 30일)을 적는 한편, 『전쟁영웅』 인물사전은 5월 26일(그레고리력 6월 8일)로 적는다.

아홉 살에 가정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했고 이후 보육원에서 자랐다. 영문 사료는 그를 아홉 살에 고아가 되었다고 서술한다. 1915년부터 방랑했다는 기록과 1918년 바라빈스크 초등학교를 마쳤다는 기록도 전한다. 1921년부터 시베리아 철도 건설 노동자로 일했고 옴스크 철도에서는 막노동을 했다. 1924년 옴스크 철도 직업기술학교를 졸업했고, 1924~1925년에는 옴스크 철도 기술학교에서 기관사 과정을 밟았으며 이 무렵 사냥꾼이 되었다. 1924~1926년에는 톰스크와 자바이칼 철도에서 막노동을 했다.

1926년 3월 적군에 지원 입대했다. 같은 해 10월 레닌그라드 군사이론 항공학교를 마쳤고, 1928년 카차 군사비행학교를 졸업했다. 1928년 6월부터 모스크바 군관구 제20독립항공대에서 하급·상급 조종사로 복무하며 비행 경력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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