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리 그리고리예비치 넬류보프

Григорий Григорьевич Нелюб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인 1934–1966 ✕ 자살

가가린의 두 번째 예비였으나 한 번도 우주에 닿지 못한 우주비행사

1966년 2월 18일, 집을 나서며 아내에게 남긴 마지막 쪽지: 「지노크! 넌 언제나 최고였어. 너 같은 여자는 찾아야만 해. 용서해.」

1961년 1월 국가위원회는 첫 유인비행 탑승 순위를 가가린, 티토프, 넬류보프로 확정했다. 보스토크 1호의 두 번째 예비였고 보스토크 3·4호 백업으로도 훈련했으나, 1963년 3월 치칼롭스카야 역에서 군 순찰대와의 충돌로 우주비행사단에서 제적됐다. 극동으로 좌천된 뒤 알코올 의존과 우울증에 빠졌고, 1966년 2월 18일 기차에 뛰어들어 서른한 살에 죽었다. 그의 존재는 글라스노스트까지 은폐됐고, 집단사진에서도 지워졌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우주비행사단 합류와 첫 비행 서열 3위

넬류보프는 1960년 3월 7일 첫 우주비행사단에 등록된 열두 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1960년 여름 첫 비행 준비를 위한 6인 훈련조가 꾸려졌고, 여기에는 가가린, 티토프, 니콜라예프, 포포비치, 카르타쇼프, 바를라모프가 이름을 올렸다. 카르타쇼프가 의료상 이유로 빠지자 넬류보프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1960년 12월부터 1961년 1월까지 여섯 후보는 주콥스키에서 훈련했다. 훈련은 비행시험연구소의 제47 연구실, 즉 보스토크 3A 기체 모형에서 주로 이뤄졌다. 1961년 1월 17~18일 치른 졸업시험에서 가가린, 티토프, 니콜라예프, 포포비치는 '우수', 넬류보프와 비콥스키는 '양호'를 받았다. 개인 신상과 훈련 평가를 검토한 선발위원회는 비행 순번을 가가린, 티토프, 넬류보프, 니콜라예프, 비콥스키, 포포비치 순으로 권고했다. 넬류보프는 첫 유인비행에서 가가린의 두 번째 예비였고, 1962년 6월에는 건강상 이유로 보스토크 3·4호 훈련조에서 제외됐다. 이때까지 그는 사단의 유력한 후보였으며, 1963년의 제적은 이 단계의 축적을 끊어버린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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