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리 세르게예비치 졸로투힌

Григорий Сергеевич Золотухин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인 1911–1988 ○ 자연사

탐보프와 크라스노다르를 거쳐 14년간 소련 곡물 조달을 총괄한 브레즈네프 시대의 농업 관료

흐루쇼프가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탐보프 제1서기 졸로투힌을 두고 이렇게 조롱했다: "저 탐보프 서기 졸로투힌은 바지를 벗고 매를 맞아야 한다고 자꾸 우겼습니다. 이게 무슨 즐거움입니까!"

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한 현장 농학자 출신으로, 전쟁 직후 탐보프주 당 기관에서 두각을 드러내 1955년부터 10년 넘게 제1서기로 탐보프를 이끌었다. 흐루쇼프 해임 직후인 1966년 크라스노다르 변경당위원회 제1서기로 옮겨 소련 최대 곡창지대를 7년간 통치했고, 1973년 브레즈네프의 신임 속에 소련 조달장관으로 발탁되어 1987년까지 14년간 곡물·사료·제분을 포함한 식량조달 체계 전반을 관장했다. 이 시기는 소련이 대규모 곡물 수입국으로 전환된 때로, 국내 수매와 수입 물류를 동시에 관리해야 했던 무거운 자리였다. 1973년 사회주의노동영웅 칭호와 5개의 레닌 훈장을 받았으며, 22년간 중앙위원 후보·위원을 지낸 브레즈네프 체제의 핵심 지역 간부였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탐보프에서 농업정치 간부로 성장하다

졸로투힌은 1928년 차킨 농업전문학교에 들어가 1931년 졸업한 뒤 그곳에 남아 실습교육 거점 책임자와 교육농장 관리자를 맡았고, 1937~1938년에는 학교장 직무대리를 했다. 이어 탐보프주 랴작사 기계·트랙터 정비소의 수석 농학자로 일하다가 1939년 공산당에 가입했다. 같은 해 콤소몰의 랴작사 지구위원회 서기와 탐보프주위원회 농촌청년 부서장으로 옮겼고, 1940년에는 탐보프주당위원회 제1서기의 보좌관으로 당 업무를 시작했다.

1942~1944년 토카료프 지구당위원회 제1서기를 지낸 뒤 탐보프주당위원회 서기로 승진했다. 1946~1949년 중앙당 고급학교에서 수학한 후 주당위원회 서기 겸 농업부서장으로 돌아왔고, 1951년 4월 제2서기가 됐다. 1955년 10월부터 1966년 1월까지 제1서기로 주를 이끌었다. 이 경력은 농업 현장의 기술직에서 콤소몰과 당의 조직·농업 담당 직책을 거쳐 지역당 수장에 이른 과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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