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로샨 죄르지

Marosán György

두 노동자당 합당을 밀어붙이고 1956년 이후 「오늘부터 쏜다」로 보복 정치의 얼굴이 된 전직 사회민주당원

제빵공 출신으로 1927년 헝가리 사회민주당에 들어가 식품노동자 노조를 이끌었다. 1945년 이후 당 서기로서 공산당과의 합당을 앞장서 밀었고, 1948년 당 우파의 제명을 발표했다. 1950년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감형되었고, 1956년 3월 풀려나 7월 정치국원·부총리가 되었다. 10월 23일 발포 명령을 요구했고, 카다르의 혁명 노농 정부에서 국무장관을 맡았다. 1962년 실각해 1965년 탈당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1956년, 발포를 요구한 국무장관

머로샨 죄르지는 1950년 라코시 정권 아래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 뒤인 1956년 3월 29일 풀려났다. 석방되자마자 당 지도부에 몸을 바쳤고, 7월에는 노동인민당 정치국원과 부총리가 되었다.

10월 23일 유고슬라비아에서 돌아온 게뢰 에르뇌 제1서기와 카다르 야노시가 함께한 정치국 회의에서, 그는 다른 모든 참석자와 맞서 대학생 시위를 금지할 뿐 아니라 무장 병력에 발포 명령을 내리라고 요구했다. 지도권이 게뢰에게서 너지 임레에게 넘어가자 그는 당 지도부에서 빠졌다. 그러나 그는 소련과 손잡은 카다르 쪽에 섰고, 11월 4일 발표된 혁명 노농 정부 명단에서 국무장관을 맡았으며, 사회주의노동자당 임시집행위원회에도 들어갔다.

복구된 권력 안에서 그는 가장 공격적인 정치인이 되었다. 12월 8일 샬고타르얀에서 지역 노동자평의회 대표단에게 뜻을 관철하지 못하자 「오늘부터 우리는 쏜다」라고 말해, 대중 시위를 무력으로 누른다는 새 정부의 방침을 공식화했다. 그날 샬고타르얀의 일제 사격으로 131명이 희생되었고, 이어 여러 지방 도시에서 발포가 잇따랐다. 다만 이 정치적 결정은 머로샨이 아니라 카다르가 내린 것으로 본다. 1962년 그가 밀려난 일은 보복의 시기가 끝나고 카다르 체제의 안정화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