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츠 라이네파르트

Heinz Reinefarth

바르샤바 봉기의 학살을 지휘한 SS 장군

라이네파르트는 바르샤바 봉기 진압 보고에서 “죽일 탄약보다 포로가 더 많다”고 썼다.

하인츠 라이네파르트는 나치당과 SS에 가입해 법률가에서 독일 점령전쟁의 지휘관으로 전환한 인물이다. 1944년 바르샤바 봉기에서 그는 전투부대와 경찰·보안 병력을 묶은 전투단을 지휘했고, 8월 5일 볼라 공격과 민간인 집단살해의 현장 지휘 구조에 핵심적으로 관여했다. 전후 폴란드의 송환 요구에도 기소와 유죄 판결을 피한 그는 서독에서 시장과 주 의회 의원으로 활동했다. 그의 경력은 전쟁범죄 지휘 책임과 전후 사회의 면책이 한 인물 안에서 이어진 사례다.

다른 이름: 하인리히 프리드리히 라이네파르트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나치 운동의 변호사에서 SS로

라이네파르트는 1927년 예나에서 법학 공부를 마친 뒤 법률가의 길에 들어섰고, 1932년 8월 나치당에 가입한 데 이어 그해 말 SS에 들어갔다. 이 시기 그는 나치당원과 SS 인물들을 대신해 여러 재판에 변호인으로 나섰다. 대표적인 사례로 1932년 8월 SS 대원들이 유대인 청소년을 위한 농업 훈련 사업장 '유대인 농업노동'(그로스 가글로)에 폭탄을 설치한 사건에서 그는 SS 측 변호를 맡았다. 그 결과 당시 SS 오버압슈니트 오스트 지도자이자 훗날 질서경찰 총수가 되는 쿠르트 달루에게 눈에 띄었고, 달루에는 그를 SS로 옮기게 한 뒤 그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가 되었다. 그는 나치당 지역 법무국장, SS 제12구역 법률고문, 나치 법률가동맹(NSRB) 지구단장 등의 직함도 맡았다. 1936년 6월에는 유대인 소유주를 축출해 비게 된 공증인 자리를, 더 자격 있는 지원자를 제치고 차지했는데, 이는 고위 나치 인사들과의 인맥이 작용한 결과였다. 그는 SS에서 상임직을 맡으라는 제안을 여러 번 거절했는데, 그 보수가 잘 나가던 자기 변호사 사무실 수입에 훨씬 못 미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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