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리 세묘노비치 파나슈크

Игорь Семёнович Панасюк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인 1917–1972 ○ 병사

쿠르차토프의 가장 가까운 조수로 F-1을 관리했으나, 스승을 고발하고 밀려난 물리학자

"이 그래파이트 샘플은 마치 굶주린 늑대가 새끼 양을 대하듯 중성자를 잡아먹습니다": 첫 흑연 품질 측정 결과를 쿠르차토프에게 보고하며

이고리 파나슈크는 쿠르차토프의 가장 신임받는 제자로, 유럽 최초의 원자로 F-1 건설을 총괄 관리하고 1946년 12월 25일 임계 실험에서 제어반을 보조한 실험물리학자다. 1943년 제2연구소에 합류해 반응로 부문 부책임자로서 흑연과 우라늄 품질 검증부터 노심 조립까지 실무를 지휘했고, 1948년 첫 산업용 원자로 'A'의 기동에도 쿠르차토프 곁에서 같은 역할을 맡았다. 1954년 돌연 스승과 결별하고 주변부 연구직으로 밀려났는데, 쿠르차토프를 당에 고발한 것이 원인으로 전해진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원자로 A의 기동과 운전

1947년 파나슈크는 마야크 단지의 첫 산업용 원자로 A 건설 현장에 파견되어 과학 책임자로 일했다. 흑연 노심의 오염은 원자로 성능을 떨어뜨릴 수 있었으므로, 그의 물리학자 집단은 중성자 탐침을 사용해 흑연 적층의 순도를 시공 전 과정에서 점검했다. 기술 채널 1,000여 개를 설치한 뒤에도 노심을 다시 탐사했고, 물리적 품질 지수가 높은 수준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작업은 설비를 채우고 기동하기 전의 검증 절차였다. (바이오아톰 자료는 이 시기를 1947년 파견과 건설 단계로 서술하고, 다른 연혁 자료도 파나슈크가 1947년부터 원자로 A의 과학 책임자였다고 기록한다.)

1948년 6월 7일 19시 쿠르차토프가 제어반에서 기동을 지휘했고, 파나슈크는 계기의 상승을 관찰하고 보고했다. 연쇄반응은 8일 0시 30분 출력 10킬로와트에서 정지되었다. 6월 10일 첫 고출력 기동에서는 20시에 출력이 1,000킬로와트에 도달했으며, 제어 및 감시 설비가 정상 작동했다. 이후 원자로 A는 1949년 소련 최초 원자폭탄에 사용된 플루토늄을 생산했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