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기훈장 4회 수훈의 내전 영웅, 국방제1부인민위원까지 올랐으나 숙청의 칼날에 스러지다
수사관이 내게 말했다: '네가 적인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너는 자백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농민 가정 출신으로 1917년 볼셰비키에 입당하여 내전에서 가장 용맹한 적군 지휘관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북카프카스, 크림, 탐보프, 크론슈타트 등 모든 주요 전선에서 부대를 지휘하며 적기훈장을 네 차례 수훈했다. 전후 군단·군관구 지휘관을 거쳐 1937년 키예프군관구 사령관에 임명되었고, 1938년 1등군사령관 계급과 함께 국방제1부인민위원에 올랐다. 대숙청기에는 키예프군관구에서 자신도 대규모 숙청을 주도했으나, 같은 해 7월 체포되어 고문 끝에 '군사 파시스트 음모'를 자백했다. 1939년 2월 사형 판결을 받고 당일 총살되었으며, 1956년 복권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18–1920 군사·지휘 · 소련 · 군사 · 국방
경력 연표
- 1917–1918볼셰비키 입당, 페오도시야에서 적위대 조직, 제1흑해혁명연대 지휘
- 1918–1920북카프카스 혁명군 총사령관 대행, 제11군 부사령관, 제58·46소총사단장
- 1921크론슈타트 봉기 진압(제187여단장), 탐보프 봉기 진압(제1전투구역 사령관)
- 1922–1931제18사단장 → 제13·2군단장 → 북카프카스·레닌그라드군관구 참모장·부사령관
- 1931–1937카프카스군·볼가군관구 사령관, 극동특별군 부사령관, 연해주군집단 사령관
- 1937–1938키예프군관구 사령관
- 1938국방제1부인민위원, 1등군사령관
관련 역사 사건
끝까지 부인한 뒤 무너진 자백
체포되기 1년 전부터 비밀정치국 특수부 수사관들은 페드코에 대한 진술을 모으고 있었다. 1938년 4월에는 스탈린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이미 체포된 I. A. 할레프스키, S. P. 우리츠키, I. P. 벨로프와 대질이 이루어졌고, 이들은 페드코가 군사 파시스트 음모에 가담했다는 진술을 확인했다. 페드코는 모든 혐의를 단호히 부인했다. 5월 1일에는 스탈린에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편지를 보냈고, 답장을 받지 못하자 6월 30일 같은 취지의 편지를 다시 보냈다.
7월 7일 체포된 그는 곧바로 신체적 고문을 당했고, 사흘 뒤인 7월 10일에는 1932년에 벨로프에게 군사 파시스트 음모로 끌어들여졌다고 자백했다. 수사관 N. N. 표도로프는 상부에 자신의 '성과'를 보고하면서, 페드코가 처음에는 심문과 대질에서 진술을 거부했으나 표도로프가 '얼굴을 때리고 독방에 넣은' 뒤에 모든 것을 자백했다고 확인했다. 페드코는 체포 후 진정서에서 수사관의 말을 이렇게 옮겼다. "수사관이 내게 말했다. 네가 적인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너는 자백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