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스테파노비치 이사코프

Иван Степанович Исак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아르메니아 1894–1967 ○ 자연사

한쪽 다리를 잃고도 두 전쟁을 치른 소련 해군의 학자 제독

스탈린이 이사코프를 평했다: "진짜 함대 제독, 이사코프 동지. 똑똑하군, 다리는 없지만 머리는 있지."

아르메니아계 소련 해군 지휘관으로, 1955년 소련 해군 최고 계급인 아드미랄 플로타 소비에츠코고 소유자에 오른 단 세 명 중 한 명이다. 해군 제1부인민위원과 주참모부장을 지내며 소련 해군의 작전 교리를 정립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발트·흑해함대와 육군 간 협동작전을 조정하고 레닌그라드 '생명의 길'을 구축했다. 1942년 투압세에서 독일 공습으로 중상을 입어 왼쪽 다리를 절단했으나 종전까지 복무했다. 전후 3권의 『해양 지도책』(스탈린상 1급)을 비롯해 해양학·해군사에 걸친 150여 편의 저작을 남겼고, 과학아카데미 통신회원과 작가동맹 회원이 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교단에서 참모로, 참모에서 학자로: 해군 이론가의 형성

교단과 학위

이사코프의 경력은 지휘와 연구를 오간 이력이었다. 1928년 고등 지휘요원 향상 과정을 마친 뒤 1929년부터 노농적군 참모부 작전관리부에서 근무했고, 1931~1932년에는 극동에 정부 파견되었다. 1932년 3월 보로실로프 해군대학 전략·작전술 교수로 옮겨 교단에 섰다. 1933년에는 백해-발트 운하를 통한 함정 이동 특별원정 제1호 참모장, 제2호 원정대장을 맡아 발트함대 함정을 북방으로 옮기는 작업을 지휘했다.

1933년 10월 발트함대 참모장이 되었으나 1935년 8월 훈련 중 잠수함 B-3 침몰 사고의 책임을 지고 해임되었다. 이는 해군 지휘관으로서 겪은 중대한 좌절이었고, 그는 다시 해군대학으로 돌아가 교관과 지휘과 고급지도원으로 일했다. 1937년 1월 발트함대 참모장으로 복귀했고 같은 해 일본의 칭다오 작전을 다룬 논문을 방어해 군사해양학 후보 학위를 받았다. 1938~1939년에는 해군대학 교장을 겸임했고, 1939년 도센트, 1947년에는 '전략 및 작전술 교수' 칭호를 받았다.

학자로서의 전후 활동

전후 그는 학술과 사회 활동에 비중을 두었다. 1947~1955년에는 3권짜리 『해양 지도책』의 책임 편집자를 맡았고, 이 작업으로 1951년 스탈린상 1급을 받았다. 1947년부터 소련 지리학회 회원, 1954~1957년 과학아카데미 산하 해양학위원회 위원, 1958년부터 그 부위원장을 지냈으며 1958년 과학아카데미 통신회원, 1967년 아르메니아 과학아카데미 명예회원이 되었다. 1964년에는 소련 작가동맹에 가입했고, 『오케아놀로기야』 편집위원(1961~1967)을 맡았다. 그의 첫 논문은 1922년 『해군 문집』에 실렸으며, 이후 해양학·지리학·군사사에 걸쳐 150편 이상의 저작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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