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켓 연구를 국가 기관으로 묶은 조직가
1937년 11월 2일, 그가 이끌던 연구소의 수석기사 랑게마크 체포 뒤 클레이묘노프도 체포되었다.
이반 클레이묘노프는 소련의 초기 로켓 기술을 조직한 군사공학자이자 행정가였다. 그는 기체역학연구소와 반응과학연구소를 연결해 연구를 군수 체계에 편입했고, 무연 추진제 로켓탄과 훗날 카튜샤로 이어진 기술 개발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그가 세운 연구기관은 대숙청 속에서 핵심 인력의 체포와 함께 붕괴했으며, 클레이묘노프 자신도 처형되었다. 1955년 무혐의로 복권되었고 1991년 사회주의 노동영웅 칭호를 추서받았다.
경력 연표
- 1919RKP(b) 입당
- 1920–1921붉은군대 군수·보급 복무
- 1928–1930공군과학연구소 공방장
- 1930–1932베를린 소련 무역대표부 공학부 부책임자
- 1932–1933기체역학연구소 소장
- 1933–1937반응과학연구소 초대 소장·원장
- 1937중앙공기유체역학연구소 프로펠러·엔진 부문 부소장
- 1938처형, 1955년 무혐의 복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