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테렌티예비치 클레이묘노프

Иван Терентьевич Клеймён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인 1899–1938 ✕ 처형

로켓 연구를 국가 기관으로 묶은 조직가

1937년 11월 2일, 그가 이끌던 연구소의 수석기사 랑게마크 체포 뒤 클레이묘노프도 체포되었다.

이반 클레이묘노프는 소련의 초기 로켓 기술을 조직한 군사공학자이자 행정가였다. 그는 기체역학연구소와 반응과학연구소를 연결해 연구를 군수 체계에 편입했고, 무연 추진제 로켓탄과 훗날 카튜샤로 이어진 기술 개발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그가 세운 연구기관은 대숙청 속에서 핵심 인력의 체포와 함께 붕괴했으며, 클레이묘노프 자신도 처형되었다. 1955년 무혐의로 복권되었고 1991년 사회주의 노동영웅 칭호를 추서받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항공공학자에서 로켓 연구 조직가로: 아카데미와 베를린, 그리고 GDL

클레이묘노프는 1899년 3월 30일(그레고리력 4월 11일) 탐보프현 스타라야 수라바의 무토지 농가에서 태어났다. 데그탼스크 교구학교 3학년을 마친 뒤 1913년 모르샨스크 지방 남자김나지움 4학년에 들어갔고, 1918년에 졸업했다. 1918년 붉은군대에 들어가 제1차 모스크바 소비에트 과정 포병과에 등록했으며 같은 해 학급 전체와 함께 자원해 동부전선 제3군 사령부에서 복무했고, 1919년에는 당원이 되었다. 1919년 4월에는 학습을 위해 전지공작과정에 파견되었고, 1919년 8월부터 1920년 5월까지는 붉은군대 군사경제아카데미 속성과정을 마친 뒤 남서전선 제14군의 군수 담당 특파원으로 일했다.

1921년 초 모스크바제1국립대학 물리수학부 수학과에 들어갔으나 학업은 대외무역인민위원회 근무와 병행해야 했다. 1923년 모스크바시당의 파견으로 N. E. 주콥스키 공군아카데미 공학부로 옮겼고, 1928년 '공군 군사기계공학자' 자격으로 졸업한 뒤 붉은군대 공군과학연구소 마스터스크의 소장으로 임명되었다. 독일어 구사와 대외무역 경험을 인정받아 베를린 무역대표부 공학부로 파견되어 선임기술자로 일하다가 그 부서 부소장으로 승진했고, 담당 업무로 독일 각 도시와 유럽 여러 나라를 다녔다.

클레이묘노프는 1928년 졸업과 함께 곧바로 베를린으로 간 것으로 서술되기도 하고, 1929년에 파견된 것으로 서술되기도 한다. 연구소 시기에 이르면 기록이 더 분명하다. 1931년 M. N. 투하쳅스키가 로켓 기술과 신형 무기를 한 기관에 집중시키려는 구상을 세웠고, 1932년 5월 모스크바로 돌아온 클레이묘노프는 포병총국장 N. A. 예피모프의 제안을 받아 기체역학연구소 소장직을 수락했다. 취임 시점은 1932년 12월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는 이 연구소를 완전한 연구기관으로 발전시킬 인물로 기대를 받았다. GDL에서 클레이묘노프는 V. A. 아르테미예프, G. E. 랑게마크와 함께 항공기 및 다총신 박격포용 무연 화약 로켓탄 개발에 들어갔고, 1933년 9월까지 소장으로 재직한 뒤 그해 말 GDL이 로켓 연구를 통합한 모스크바의 새 기관으로 편입되면서 그 기관의 수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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