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로슬라프 세이페르트

Jaroslav Seifert
공산주의 체코슬로바키아 체코인 1901–1986 ○ 자연사

개혁의 순간마다 검열과 권력에 맞선 시인

1968년 9월 침공을 비판하며 그는 프라하에 들어온 첫 전차와 마지막 전차를 비교해 말했다.

야로슬라프 세이페르트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시인이자 기자로, 프라하의 노동계급 문화와 아방가르드 시를 연결한 작가였다. 그는 1929년 공산당의 관료화와 스탈린주의적 전환에 항의해 당을 떠났지만 좌파적 사회 감각을 버리지 않았다. 1948년 이후 작가 탄압을 조사한 위원회를 이끌었고, 1968년 작가대회에서 검열 폐지와 문화적 개방을 뒷받침했으며, 침공 뒤에도 공개적으로 저항했다. 1984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지만 정상화 체제에서는 작품과 공적 발언이 제한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정상화 체제와 차르타 77

1970년대 정상화 체제가 들어서면서 세이페르트는 시민적 입장과 공적 권위 때문에 새 권력의 미움을 산 작가 대열에 들어가 은둔을 강요당했다. 그의 작품 가운데 일부 재판만이 드물게 나올 수 있었고, 새 작품은 1970년대 말에 이르러서야 유보 조건 아래 공개되었다. 체제는 그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어떻게 다룰지 방법을 찾고 있었다. 책을 내주는 대가로 공개 발언과 서명 운동에 나서지 않는다는 합의를 세이페르트는 거듭 어겼고, 1976년 12월에는 차르타 77의 첫 서명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은 사미즈다트를 통해 정기적으로 유통되었다. 《시인이 된다는 것》, 《모두병 기둥》,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 같은 시집이 사미즈다트로 나왔고 사람들은 그것을 필사해 널리 퍼뜨렸다. 사미즈다트 유통은 당국이 처벌하는 행위였다. 이르지 그룬토라트는 세이페르트와 보후슬라프 레이네크의 시집 등을 비롯한 문학 텍스트와 음악 녹음물을 퍼뜨린 혐의로 국가 전복죄로 4년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석방된 뒤에도 3년 동안 이른바 보호관찰 처분을 받아 밤에 프라하 2구를 벗어날 수 없었다. 세이페르트 본인이 투옥된 것은 아니며, 이 사례는 그의 금서가 제3자의 형사처벌로 이어진 별개의 문서화된 사건이다.

정상화 체제의 압력 속에서도 세이페르트는 1984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건강이 나빠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해 딸이 대신 상을 받았고, 체제가 통제하는 매체는 이 중대한 사건을 한 줄 언급으로 처리했다. 노벨상 심사에 필요한 자료와 회고록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 원고를 해외로 보낸 이르지나 시클로바는 그 때문에 사법 처벌까지 받았다. 체제는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부정할 수 없었고, 그를 침묵시키는 대신 사후에 그를 자기 선전에 끌어들이려 했다. 1976년 차르타 77 서명과 사미즈다트 유통, 노벨상 수상은 체코슬로바키아 당국이 문학을 통제하려 한 방식과 그 통제가 끝내 관철되지 못한 지점을 함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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