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전쟁의 장군, 플뢰뤼스의 승리자이자 1798년 징병법 입안자
1794년 플뢰뤼스에서 제1차 대동맹에 결정적 승리를 거둔 것이 혁명기의 대표적 순간이다. 1798년에는 오백인회에서 동료 의원 피에르 델브렐과 함께 20~25세의 독신·무자녀 남성을 징병하는 주르당법을 발의해 통과시켰다.
프랑스의 군인으로 프랑스 혁명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에서 복무했고 1804년 제국 원수가 되었다. 1762년 리모주에서 외과의사 로크 주르당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 독립 전쟁에 참전했으며, 혁명 전쟁에서 북부군을 이끌어 1793년 10월 와티니에서 승리하고 마우보주 포위를 깼다. 이어 삼브르에뫼즈군을 지휘해 1794년 플뢰뤼스에서 제1차 대동맹을 상대로 결정적 승리를 거두었다. 총재정부 시기 자코뱅 정치인으로서 오백인회 의원(1797~1799)으로 일했고, 1798년 징병법(주르당법)을 입안했다. 1813년 비토리아에서 패배했으나 1830년 7월 혁명을 지지했고, 사망할 때까지 앵발리드 총독을 지냈다.
경력 연표
- 1778–1783보조루아 연대에 입대해 미국 독립 전쟁에 참전, 1779년 서배너와 서인도 제도에서 복무
- 17935월 27일 준장으로 진급하고 두 달 뒤 사단장이 되었으며, 9월 22일 북부군 사령관에 임명되어 10월 와티니에서 승리
- 1794삼브르에뫼즈군(6월 29일 정식 편성)을 이끌고 6월 26일 플뢰뤼스에서 승리
- 1797–1799오백인회 의원으로 선출되어 1798년 징병법을 발의·통과시켰고, 1799년 오스트라흐와 슈토카흐에서 패배
- 1804–1815나폴레옹에게 원수와 백작 작위를 받고 피에몬테 총독을 지냈으며, 1808년 스페인에서 조제프 보나파르트의 참모장을 맡고 1813년 비토리아에서 패배
- 1816–18331815년 이후 부르봉 왕가에 충성해 1816년 그르노블 총독, 1819년 프랑스 상원의원이 되었고, 1830년 7월 혁명을 지지해 잠시 외무를 맡은 뒤 앵발리드 총독으로 사망할 때까지 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