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레지스탕스 출신 관료로, 1946년 호찌민과 3월 6일 예비협정을 맺었다
1946년 3월 6일 호찌민과 협정을 맺어 프랑스군이 하노이에 전투 없이 진입하도록 했다.
본명은 장 로제(Jean Roger)이며, 제2차 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 정보망 ‘알리앙스’의 노르망디 책임자로 활동했다. 해방 후 프랑스 정부를 대표해 통킹·북부 안남의 공화국 위원으로 임명되어 호찌민과 협상했고, 1946년 3월 6일 협정으로 프랑스군의 하노이 진입을 전투 없이 이루게 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외교·국제활동 · 프랑스 국가기관
경력 연표
- 1907프랑스 르 베지네에서 태어났다.
- 1940–1944레지스탕스 정보망 알리앙스에서 노르망디 책임자로 활동했다.
- 1945–1946통킹·북부 안남 주재 프랑스 공화국 위원으로 호찌민과 협상했다.
- 19463월 6일 예비협정에 서명했다.
- 1954프랑스 정부의 북베트남 대표로 임명되었다.
- 1962–1966보훈장관을 지냈다.
- 1968–1977헌법위원회 위원으로 재임했다.
관련 역사 사건
1946~1947년 인도차이나 전쟁과 프랑스의 정책
1946년 3월 6일 합의 뒤 생트니는 호찌민의 프랑스 방문과 퐁텐블로 회담을 준비하며 4월 프랑스로 돌아갔다. 퀘벡 몬트리올대의 전쟁사 사전은 생트니가 그해 5월부터 11월까지 프랑스에 머물렀다고 기록한다. 11월 하이퐁 사태가 벌어지자 프랑스 정부는 그를 하노이로 보냈고, 그는 12월 6일에야 도착했다. 12월 19일 전투가 시작될 때 차량이 지뢰를 밟아 중상을 입었으며, 며칠 뒤 직무에 복귀해 총독부 청사를 다시 공식적으로 인수했다.
생트니는 교전 발발 직전 프랑스 정부의 지시도 수행했다. 몬트리올대 사전은 11월 조르주 티에리 다르장리외가 그를 보내 베트남 정부의 주요 인사를 프랑스에 더 우호적인 인물로 교체하도록 호찌민에게 압력을 가하게 했고, 생트니가 그 지시를 따랐다고 설명한다. 이는 3월 합의의 협상자였던 그가 프랑스의 식민 통치권 회복 정책에도 참여했음을 보여준다. 1947년 3월 그는 인도차이나 문제를 둘러싼 의회 논의를 돕기 위해 파리로 소환되었다. 12월에는 인도차이나에서 전쟁이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요청한 대로 현역에서 물러났다. 1953년에는 하이퐁 사태와 인도차이나 경험을 다룬 회고록 《실패한 평화의 역사》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