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을 넘어 노동자 통합을 추구한 혁명가
1936년 체포된 뒤 마우린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감옥에 갇혀 있었고, POUM은 그의 부재 속에서 안드레우 닌의 지도 아래 놓였다.
호아킨 마우린은 스페인의 공산주의 정치가이자 노동운동가로, 카탈루냐에서 대중적 혁명정당의 길을 모색했다. 그는 노동자농민블록을 이끌며 공산당의 스탈린주의 노선과 결별했고, 1935년 안드레우 닌과 함께 POUM을 창설해 초대 총서기가 되었다. 1936년 군사봉기 때 국민파 지역에 갇혀 체포된 뒤 내전 전 기간을 감옥에서 보냈으며, 그의 부재 속에서 닌이 당을 이끌었다. 석방과 망명 뒤에는 뉴욕에서 문필과 통신 사업으로 활동하며 스페인 혁명의 경험을 기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14–1920레리다에서 교사로 일하며 CNT에 가입
- 1920–1922레리다 CNT 서기, 《루차 소시알》 편집자
- 1921–1922CNT 전국 서기국 임시 서기
- 1924–1930카탈루냐발레아르 공산주의연맹 조직자
- 1931–1935노동자농민블록 서기장
- 1935–1936POUM 공동 창립자, 초대 총서기
- 1936인민전선 후보로 바르셀로나 하원의원
- 1949–1973뉴욕 아메리칸 리터러리 에이전시 설립자·작가
관련 역사 사건
혁명적 조합주의에서 공산주의로, 1920~1924
마우린은 법학을 공부한 뒤 카탈루냐 레리다에서 활동하며 아나르코생디칼리즘 조직인 전국노동총연맹(CNT)에 가입했다. 1920년 레리다 지역 서기로 선출되고 기관지 《루차 소시알》의 편집자가 되었으며, 1921년에는 모스크바에서 열린 적색노동조합인터내셔널(프로핀테른) 대회에 CNT 대표로 참석했다.
귀국 후 CNT 총서기로 선출되었으나 1922년 2월 체포되어 구금되었다. 석방된 뒤 그는 CNT 내부의 볼셰비키 성향 조직으로 혁명적 조합주의 위원회를 창설하고, 같은 해 12월 그 기관지 《라 바타야》를 창간했다. 1924년에는 《라 바타야》를 스페인 공산당과 합병하고 당의 지역 조직인 카탈루냐-발레아르 공산주의연맹을 맡아 조직했다.
이 시기의 행보는 그가 조합운동의 실천 경험 위에서 공산주의 조직 정치로 옮겨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노동자 대중 조직을 중심에 두려는 태도는 이후 노동자농민블록과 POUM에서도 이어졌다. 프리모 데 리베라 독재정권의 반대파 탄압 속에서 1925년 1월 다시 체포되어 투옥되기까지, 그는 레리다와 바르셀로나를 잇는 카탈루냐 노동운동의 조직가로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