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루이스 개디스

John Lewis Gaddis
미국 미국인 1941–

냉전사 후기수정주의를 창시하고 소련 기록공개 이후 정통주의로 회귀한 역사가

인과의 사슬을 최종적으로 고정시킨 것은 자신의 권위주의적·편집증적·자기애적 성향에 예측 가능하게 반응한 스탈린이었다.

미국의 냉전사가로, 1972년 첫 저서로 후기수정주의 학파를 창시했다. 냉전의 책임이 양측에 있다는 틀을 세웠으나, 소련 붕괴 후 기록보관소가 열리자 1997년 『우리는 이제 안다』에서 스탈린이 냉전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정통주의로 회귀했다. 조지 F. 케넌의 공식 전기로 2012년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예일대 교수로 『뉴욕타임스』로부터 '냉전사가들의 학장'이라 불렸다. 그의 궤적은 냉전사 서술이 증거에 따라 어떻게 진화하는지를 보여준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정책 대전략 논객과 부시 행정부와의 관계

개디스는 냉전이 끝난 뒤에도 냉전사 연구소 안에 머물지 않고 미국의 정책 논쟁에 직접 뛰어들었다. 그는 1991년 우드로 윌슨 센터의 냉전국제사프로젝트 설립을 도왔고 그 자문위원을 맡아, 각국 기록보관소를 다국적 연구자들이 함께 읽는 관행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했다.

2001년 9·11 사태 이후 개디스의 발언은 명확한 정치적 성격을 띠었다. 2002년 『포린 폴리시』의 「변혁의 대전략」과 2005년 『포린 어페어스』의 「2기 행정부의 대전략」 같은 글에서 그는 대전략 논의를 정책 제안으로 밀어붙였다. 이라크 침공 시기에는 "이제 세계는 민주주의를 위해 안전하게 만들어져야 하며, 이것은 더 이상 이상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안전 문제"라고 주장했고, 이라크 점령기에는 부시가 미국을 "2001년 9월 11일보다 국제체제 안에서 더 강력하고 목적의식 있는 행위자"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사학자 제임스 체이스는 그가 대외적으로 '비공식적 제국 정책'을 지지한다고 보았고, 개디스 본인은 예방전쟁을 미국 전통의 건설적 요소로 보았으며 예방전쟁과 선제전쟁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시의 연설 작성자들에게 조언을 건네는 사이였고, 43대 대통령의 '공공연한 추종자'로 묘사되기도 했다. 부시는 퇴임 뒤 개디스의 권유로 그림을 시작했다.

이런 정책 밀착은 학계 안에서 그의 위치에 대한 논쟁을 낳았다. 개디스는 1970년대까지 미국·영국 등 서방 정부 문서의 공개를 토대로 정통주의와 수정주의를 넘어서려 한 후기수정주의의 대표자였지만, 스탈린의 성격과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미국적 관점에 기울면서 이제는 후기수정주의자라기보다 정통주의자로 널리 평가된다. 1990년대에는 수정주의 역사가 브루스 커밍스와 공개 논쟁을 벌였고, 커밍스는 그를 도덕주의적이며 객관성을 결여했다고 비판했다. 2005년의 『냉전』에 대해서도 토니 주트는 "미국에서 본 대로, 미국에서 경험한 대로, 많은 미국 독자들이 가장 받아들이기 쉬운 방식으로 이야기한 미국의 냉전사"라고 평했고, 데이비드 S. 페인터는 미국 정책과 정책 입안자들을 정교하게 옹호한 책이며 포괄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즉 개디스의 후기 작업은 냉전사 서술이 증거의 확대만이 아니라 역사가 자신의 정치적 선택에 따라서도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