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제정 마지막 4년 동안 공화파 시위를 거칠게 탄압한 파리 경찰청장, 코르시카의 보나파르트파
1820년 코르시카 사르텐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법을 공부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1848년 2월 혁명을 열렬히 지지했고 형 피에르마리 피에트리의 도움으로 아르장탕 부지사가 되었으나, 곧 루이 나폴레옹 지지자가 되었다. 아리에주·셰르·에로·노르 도지사를 거쳐 1866년 2월 21일 파리 경찰청장이 되었다. 1867년 11월 몽마르트르 묘지에서 보댕의 무덤에 모인 공화파 1,500명을 포위하는 등 소요를 거세게 눌렀고, 부하들의 폭력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스당 패배 뒤 9월 4일 서둘러 프랑스를 떠나 망명한 나폴레옹 3세 곁으로 갔다. 그 뒤 보나파르트파 위원회의 가장 활발한 일원이 되었고, 1879~1885년 코르시카 상원의원을 지냈다.
다른 이름: 조아생 피에트리 · 에밀 조제프 마리 피에트리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48아르장탕 부지사
- 1853–1866아리에주·셰르·에로·노르 도지사
- 1866–1870파리 경찰청장
- 1879–1885코르시카 상원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