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에르 아래 「베르사유 정부」의 법무장관·부의장으로 코뮌과의 내전을 치르고 뒤에 총리를 지낸 자유주의 법률가
1798년 소종에서 태어나 보르도에서 변호사로 이름을 얻었다. 7월 왕정 아래 1834년 하원의원이 되어 1839~1840년 공공사업장관, 1842~1848년 하원 부의장을 지냈다. 1848년 공화국을 받아들여 카베냐크 정부와 1849년 루이 나폴레옹 아래에서 내무장관을 지냈고, 제2제정기에는 파리 변호사회 회장을 지내며 자유주의 반대파에 섰다. 1871년 2월 국민의회 의원이 되어 티에르 아래 법무장관 겸 각료회의 부의장으로 「베르사유 정부」를 이끌었고, 이 정부가 코뮌과의 내전을 치렀다. 1876년 처음으로 「각료회의 의장」 칭호를 쓴 총리가 되고 종신 상원의원에 뽑혔으며, 1877년 12월부터 1879년 1월 마크마옹이 물러날 때까지 다시 총리를 지냈다.
다른 이름: 쥘 아르망 뒤포르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34–1848샤랑트앵페리외르 도 하원의원
- 1839–1840공공사업장관
- 1848–1849내무장관
- 1871–1873법무장관·각료회의 부의장
- 1876각료회의 의장, 종신 상원의원
- 1877–1879각료회의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