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

Симон Тер-Петросян
소련공산당·볼셰비키 소련 공산주의 소련 그루지야 1882–1922 ✕ 교통사고

볼셰비키의 전설적 무장약탈자, 광기를 연기해 사형을 네 번 피한 혁명가

레닌이 그를 평했다: 「완전히 예외적인 충성심, 용기, 그리고 에너지를 지닌 사람」. 막심 고리키는 그를 「혁명의 예술가」라 불렀다.

본명 시몬 테르-페트로샨. 고리 출신으로 스탈린과 어린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고, 그에게 러시아어를 배우며 마르크스주의에 눈떴다. 1907년 티플리스 은행 마차 습격을 지휘해 34만 루블을 볼셰비키 금고에 쥐여준 조직자였다. 베를린에서 체포되어 독일 정신과 의사들조차 속인 치밀한 광기 연기로 사형을 면했고, 티플리스 정신병원 탈출 후 파리에서 레닌의 환대를 받았다. 내전기에는 캅카스 지하조직을 재건했으나, 그 모든 파괴적 용기는 평화로운 일상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1922년 티플리스 거리에서 자전거를 타다 트럭에 치여 생을 마감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재체포와 네 번의 사형 선고

1911년 8월 티플리스 정신병동을 탈출한 카모는 파리에서 레닌을 만나고 크라신과 함께 또 다른 무장약탈을 계획했다. 그러나 실행 전에 체포되어 1912년부터 수감되었고, 이번에는 광기를 연기하지 않았다. 티플리스 법정은 그에게 1907년 은행 습격을 포함한 활동을 이유로 사형을 선고했는데, 이것이 한 건이 아니라 네 건의 사형 선고였다. 사형 집행을 기다리던 1912년 카모는 동료 수감자에게 이런 쪽지를 남겼다. "죽음을 각오하고 있다. 절대적으로 침착하다. 내 무덤 위에는 이미 풀이 여섯 자나 자랐을 것이다. 죽음을 영원히 피할 수는 없다.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다시 운을 시험해 보겠다. 어떤 식으로든 탈출을 시도하겠다. 어쩌면 우리가 다시 한번 적들을 비웃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족쇄에 묶여 있다. 좋을 대로 하라. 나는 무엇이든 준비되어 있다." 그를 기다린 것은 사형 집행이 아니라 1913년 로마노프 왕조 300주년 기념 사면이었다. 그는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사형에서 장기 징역으로 감형되었고, 1917년 2월 혁명으로 석방되었다. 정신병원 탈출과 사형수 독방을 모두 통과한 이 사람이 결국 감옥 밖에서 맞은 것은 혁명이었다. 네 번의 사형 선고는 집행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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