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즈네프 시대 제3세계 정책을 설계한 국제부 이론가
브루텐츠와 국제부 전문가들은 1979년 아프가니스탄 파병이 '어리석은 짓'이라고 판단했다. 그 의견을 전달할 부서장 포노마료프는 중대한 12월 회의에서 아예 배제되었다.
아르메니아계 소비에트 국제부 이론가로, 브레즈네프-고르바초프 시기 소련의 제3세계 정책을 실무적으로 설계했다. 중앙위 국제부 제1부부장으로서 '민족민주주의' 개념의 정립을 주도했고, 1979년 아프가니스탄 파병 결정을 내부에서 반대한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46–1948바쿠 정신병원 의사
- 1950–1954바쿠 시당 위원회 강사
- 1954–1958사회과학아카데미 대학원생, 1958년 학위 취득
- 1961–1969『평화와 사회주의의 제문제』(프라하) 민족해방운동부장
- 1961–1976중앙위 국제부 책임직, 제3세계 정책 기획
- 1976–1986중앙위 국제부 제1부부장
- 1986–1990중앙위 후보위원
- 1997–2017러시아 외교정책협회 부회장
관련 역사 사건
민족민주주의 이론과 제3세계 정책의 설계
브루텐츠의 이론가로서의 몫은 소련 국제부가 탈식민지 '제3세계'를 어떻게 분류하고 끌어안을 것인지를 학술적으로 정리한 데 있다. 1958년 「미국 '신'식민주의 이데올로기의 비판」으로 학위를 받은 그는 1959년 『아시아·아프리카 인민들의 민족해방운동』, 1968년 『현대의 혁명적 민주주의』, 1974년 『현대의 민족해방혁명들』을 잇달아 펴내며 이론의 골격을 세웠다.
그가 1950년대 후반 중앙위에서 이끈 특별작업반은 제3세계 국가들의 계급 구조와 해방투쟁을 분석해 당 문건과 지도자 연설의 초안을 만들었고, 이것이 비준을 거쳐 당의 공식 노선이 되었다. 브루텐츠의 핵심 명제는 민족부르주아지가 식민 국가에 맞서 독립국 수립과 민족시장 장악을 추구하는 한 연대의 대상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1960년 모스크바 국제회의에서 '민족민주주의'가 공산주의 운동의 공식 용어로 채택되는 이론적 기반이 됐고, '비자본주의 발전'·'사회주의 지향' 개념과 짝을 이루며 남아프리카 ANC의 이념적 뿌리에도 이어졌다.
동시에 그는 교조에서 가장 먼저 벗어난 이론가였다. 1979년 초 포노마료프에게 보낸 일련의 각서에서 브루텐츠는 제3세계의 사회주의 건설이 '너무나 소련의 사업'으로 변했다고 지적하며, 현지 혁명세력이 자생적으로 성숙하기 전에 모스크바가 결과를 대신 만들어내려 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경고했다. 이 각서는 같은 해 아프가니스탄 파병에 대한 그의 내부 반대와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