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티잔 출신 벨라루스 지도자, 브레즈네프 정치국원 겸 연방 부총리
오늘날 내가 같은 작전을 지휘하라는 제안을 받는다면, 나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체코인들에게 우리를 용서해 달라고 부탁한다.
벨라루스 파르티잔 지도자로 1956년 벨라루스 공산당 제1서기, 1965년부터 소련 정치국 정위원 겸 제1부총리로 13년간 경제를 총괄했으며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의 정치감독관이었다.
경력 연표
- 1933–1936파리치 지역 도로부 기술자, 고멜 자동차도로기술학교 졸업
- 1936–1938붉은 군대 복무, 이후 벨라루스 철도 정치부 근무
- 1940–1941고멜 시 콤소몰 비서 → 브레스트 주 콤소몰 제1서기
- 1942–1943중앙유격대본부 대표로 벨라루스 파르티잔 운동 지도 (중령 → 대령)
- 1943–1947벨라루스 콤소몰 중앙위 제2서기 → 제1서기
- 1949–1950민스크 시당위 제2서기 → 제1서기
- 1950–1953민스크 주당위 제1서기
- 1953–1956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각료회의 의장
- 1956–1965벨라루스 공산당 중앙위 제1서기
- 1957–1965CPSU 중앙위 간부회 후보위원
- 1965–1978CPSU 정치국 정위원 겸 소련 각료회의 제1부의장 —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진입 작전 현장 정치감독관
- 1986–1989전연방 전쟁·노동 재향군인회 초대 의장
관련 역사 사건
벨라루스 경제 전환 (1956–1965)
마주로프가 1956년 벨라루스 공산당 제1서기로 취임했을 때, 벨라루스는 전쟁의 폐허에서 이제 막 산업 기반을 회복한 상태였다. 그의 재임 9년 동안 약 450개의 국영 기업이 신설되었으며, 특히 화학·전자·에너지·석유화학 분야에 집중 투자가 이루어졌다. 대표적으로 벨라루스 자동차 공장(BelAZ), 칼륨 비료 생산기업 벨라루스칼리, 모길료프 제철 콤비나트가 이 시기에 설립되었고, 최초의 송유관과 가스관도 부설되었다. 마주로프는 교육에도 막대한 투자를 기울여 1961년 기준 벨라루스의 인구 대비 학교·대학 수는 영국,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서독을 앞질렀다. 흐루쇼프의 탈스탈린화 노선에 적극 호응하여 당내 자유화, 연금 확대, 개인 농지에 대한 세금 경감을 추진했으며, 1958년 민스크에서 발표된 전소비에트 금주 캠페인을 벨라루스에서 강력히 집행해 1만 2천 개 이상의 밀주 증류기를 파괴했다. 1965년 그가 연방 정치국 정위원으로 승진하며 모스크바로 떠날 때, 마주로프는 후임으로 같은 파르티잔 출신인 표트르 마셰로프를 추천했고, 마셰로프는 이후 벨라루스 경제 성장을 한층 가속화하여 공화국을 '소련의 조립 공장'으로 불리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