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러시아 공화국을 이끈 행정가, 모스크바 대피 실패의 책임자
1942년 5월, 독일군이 소련 깊숙이 진격한 전시의 절정에서 팜필로프는 러시아 공화국 인민위원회의 의장 권한대행이 되었다. 1년도 채 안 되어 심부전으로 숨질 때까지, 그는 전선 너머의 민간 행정 전체를 홀로 떠맡았다.
회계사 아들로 태어나 10대에 당에 입당한 콘스탄틴 팜필로프는 남북전쟁과 크론시타트 진압을 거쳐 소비에트 행정가로 성장했다. 모스크바 주택 관리와 러시아 공화국 공공주택 인민위원을 거쳐, 독소전 발발 직후에는 소련 대피위원회 부의장으로서 민간인 소개를 지휘했으나 당·정부 간부 가족 우선 대피로 모스크바 대혼란(1941)의 한 원인을 제공했다. 1942년 5월부터 이반 호흘로프의 후임으로 러시아 공화국 인민위원회의 의장 권한대행을 맡아 전시 행정을 총괄했으며, 재임 중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그의 유골은 크렘린 벽에 안장되었고, 모스크바 공공주택 아카데미는 그의 이름을 따서 개칭되었다.
경력 연표
- 1918–1919볼로스트 혁명위원회 의장, 두홉시나 현 소비에트 집행위 서기, 볼로스트 당위 서기, 현 법원 서기
- 1921크론시타트 봉기 진압 참여 (지원자)
- 1923스몰렌스크 노동자학교 졸업
- 1924–1927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소비에트 법학부 야간과정 수학
- 1927–1937모스크바 소비에트 근무, 모스크바 주택신탁 관리자
- 1937–1938러시아 공화국 공공주택 인민위원부 주택총국장
- 1938–1940러시아 공화국 공공주택 인민위원
- 1940–1942러시아 공화국 인민위원회의 부의장
- 1941.9–12소련 인민위원회의 대피위원회 부의장
- 1942–1943러시아 공화국 인민위원회의 의장 권한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