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틴 드미트리예비치 팜필로프

Константин Дмитриевич Памфил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인 1901–1943 ○ 자연사

전시 러시아 공화국을 이끈 행정가, 모스크바 대피 실패의 책임자

1942년 5월, 독일군이 소련 깊숙이 진격한 전시의 절정에서 팜필로프는 러시아 공화국 인민위원회의 의장 권한대행이 되었다. 1년도 채 안 되어 심부전으로 숨질 때까지, 그는 전선 너머의 민간 행정 전체를 홀로 떠맡았다.

회계사 아들로 태어나 10대에 당에 입당한 콘스탄틴 팜필로프는 남북전쟁과 크론시타트 진압을 거쳐 소비에트 행정가로 성장했다. 모스크바 주택 관리와 러시아 공화국 공공주택 인민위원을 거쳐, 독소전 발발 직후에는 소련 대피위원회 부의장으로서 민간인 소개를 지휘했으나 당·정부 간부 가족 우선 대피로 모스크바 대혼란(1941)의 한 원인을 제공했다. 1942년 5월부터 이반 호흘로프의 후임으로 러시아 공화국 인민위원회의 의장 권한대행을 맡아 전시 행정을 총괄했으며, 재임 중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그의 유골은 크렘린 벽에 안장되었고, 모스크바 공공주택 아카데미는 그의 이름을 따서 개칭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러시아 공화국 인민위원회의 의장 권한대행, 1942~1943

팜필로프가 러시아 공화국 인민위원회의 의장 권한대행을 맡게 된 것은 정식 임명이 아니라 부재의 결과였다. 1940년 6월부터 러시아 공화국 인민위원회의 의장이던 이반 호흘로프는 서부전선 군사평의회 위원으로 나가 있었고, 그의 장기 부재가 이어지면서 1942년 5월 5일부터 부의장이던 팜필로프가 의장 직무를 대행하게 되었다.

전시의 러시아 공화국은 전선 후방의 민간 행정 전반을 떠안고 있었다. 공업 시설의 동부 이전과 주민 소개, 병력 수송과 군수품·연료 공급, 서부 및 남서부 지역에서의 대피, 군수 장비 수리가 주요 업무로 제기되었다. 팜필로프는 이 가운데 민간 행정의 축을 담당했으며, 전쟁 이전 공공주택 행정에서 쌓은 경력이 그에게 그러한 역할을 맡기는 배경이 되었다.

그는 러시아 공화국 최고소비에트 제1기 대의원이기도 했다. 1943년 5월 2일 모스크바에서 숨을 거둔 뒤 그의 유골은 붉은 광장 크렘린 벽에 안장되었고, 모스크바의 공공주택 아카데미와 스몰렌스크의 거리에는 그의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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