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공군을 제트·핵 시대로 이끈 두 번의 공군 총사령관
쿠반 공중전에서 베르시닌은 항공자산을 분산 배속하던 기존 교리를 깨고, 전선 항공대를 결정적 축선에 집중시켰다. 에이스 포크리시킨은 베르시닌이 주재한 전투기 조종사 전군 회의를 '전쟁 2년 동안 전례가 없던 일'이라고 회고했다.
소련 공군 총사령관을 두 차례(1946~1949, 1957~1969) 역임하며 항공전력을 제트기와 핵무장 체제로 재편한 군사 지도자다. 빈농 출신으로 1919년 붉은 군대에 입대해 보병 장교로 내전을 겪었고, 1930년 항공대로 강제 전속된 후 급속히 성장했다. 독소전쟁에서는 제4항공군을 지휘하며 쿠반 공중전에서 전선 항공대를 결정적 축선에 집중시키는 혁신적 운용으로 승리를 이끌었고, 벨라루스 공세에서의 공로로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를 받았다. 전후에는 공군 총사령관으로서 제트기 전환과 핵폭격기 부대 창설을 진두지휘했으나, 1949년 돌연 강등되어 바쿠 방공군 사령관으로 좌천되었다가 1957년 흐루쇼프에 의해 복귀해 1969년까지 재임하며 전략항공 역량을 완성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41–1942 군사·지휘 · 소련 · 군사 · 국방
경력 연표
- 1941–1942남부전선 공군 사령관
- 1942–1943제4항공군 사령관
- 1943북캅카스전선 공군 사령관
- 1943–1945제4항공군 사령관 (재임)
- 1946–1949소련 공군 총사령관 · 국방부 차관
- 1953–1954소련 방공군 사령관
- 1957–1969소련 공군 총사령관 · 국방부 차관 (재임)
- 1969–1973국방부 감찰총감단 감찰관
관련 역사 사건
1947년 핵폭격기 부대 창설과 첫 총사령관직의 종료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베르시닌이 맞은 과제는 전시의 전선 항공대를 제트기와 핵무장 체제로 바꾸는 일이었다. 1946년 3월 공군 총사령관 겸 국방부 차관에 오른 그는 항공전력의 제트기 재무장을 직접 지휘했고, 같은 해 6월 3일 공군 원수 계급을 받았다. 핵무장 단계로의 전환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47년 11월 10일, 국방부 장관의 지시가 있은 지 두 달 반 만에 그는 장거리 항공대 소속 핵폭격기 부대를 창설하는 명령에 서명했다. 부대 창설의 근거지로 지정된 것은 제71시험장이었다. 이 조치로 핵투하 임무를 전담할 항공 조직이 처음으로 편성되었다. 그러나 이 재편 작업은 끝까지 그가 완수하지 못했다. 1949년 9월 그는 예고 없이 직위에서 물러나 바쿠 방공구역 사령관으로 옮겨졌다. 총사령관에서 방공 지역 사령관으로의 이 강등은 이후 몇 년간 이어진 인사 이동의 출발점이었다. 1950년 2월부터 9월까지 그는 제57항공군을, 1950년부터 1951년까지는 독일 주둔 소련군 제24항공군을 지휘했다. 제트기 전환과 핵폭격기 부대 편성이라는 첫 총사령관 임기의 두 과제는 이렇게 그가 자리를 떠난 뒤에도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