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공안위원회 위원을 지내고 망명 뒤 급진사회주의 의원이 된 코뮌 의원
1843년 로트에가론의 레비냐크드기옌에서 태어난 소송 대리인 사무소 서기로, 국제노동자협회 회원이었다. 파리 포위 중 13구 부구청장이 되었고 국민방위대 중앙위원회 결성에 참여했다. 1871년 3월 26일 13구에서 코뮌 평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어 사법위원회와 대외관계위원회에서 일했으며, 공안위원회 설치에 찬성해 첫 위원으로 뽑혔다. 이어 비세트르 요새 사령관이 되었고, 피의 일주일 동안 12구에서 저항을 조직한 뒤 벨기에로 피신했다. 1872년 2월 궐석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와 에든버러에서 교사로 일했다. 1880년 사면으로 돌아와 1898년부터 1902년까지 로트에가론 선출 급진사회주의 하원의원을 지냈다.
다른 이름: 니콜라 멜리에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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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
파리 코뮌(1871)코뮌 의원·공안위원회 위원프랑스 국가원수 · 정부 수반대표
정부·행정 -
1898–1902
프랑스 국가기관로트에가론 선출 하원의원
입법·국가 대표 -
사회운동·조직
경력 연표
- 1870–1871파리 13구 부구청장
- 1871.03.26–05.28파리 코뮌 평의회 의원 (13구)
- 1871.05.01–09파리 코뮌 공안위원회 위원
- 1898–1902로트에가론 선출 급진사회주의 하원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