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속에서 원자력 가속기를 세운 물리학자
“우리는 비행기로 호이노야까지 간 뒤 어둠을 기다렸다가 라도가호 상공을 저공비행했다.”
레오니트 네메노프는 핵물리학과 입자가속기 기술을 연구한 소비에트 물리학자였다. 그는 쿠르차토프의 지시로 포위된 레닌그라드에 들어가 피지테흐 사이클로트론의 핵심 부품을 회수했고, 실험실 2에서 1944년 가동한 사이클로트론 건설을 이끌었다. 이 장치는 최초의 미량 플루토늄을 얻어 화학적 분석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기반이 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29–1939 과학·기술 · 소련 · 과학 · 원자력 · 우주 개발
경력 연표
- 1929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 졸업
- 1929–1939레닌그라드 물리기술연구소 연구원
- 1939–1944대형 사이클로트론 설계와 건설 참여
- 1943–1944실험실 2 사이클로트론 건설 책임
- 1949공학박사 학위 취득
- 1962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과학아카데미 정회원, 교수
- 1968–1980가속기 물리기술·전파기술 측정 전연방연구소 소장
- 1980모스크바에서 사망
관련 역사 사건
가속기 기술의 개척: 질량결손에서 등시성 사이클로트론까지
네메노프의 학술적 공헌은 원자폭탄 프로젝트의 한 에피소드에 그치지 않고, 소련 가속기 물리의 한 시대를 관통한다. 1935년부터 1937년까지 그는 소련 최초로 질량결손 측정용 정밀 질량분석계를 제작하여 최초의 정밀 질량결손 측정을 수행했고, 빠른 이온의 작용에 따른 금속의 이차방출도 연구했다. 이어 1937년 아브람 알리하노프, 이고르 쿠르차토프, 야코프 후르긴과 함께 당시 유럽 최대 규모인 극 직경 1,200밀리미터 사이클로트론을 설계했다. 이 장치는 1942년 1월 가동을 목표로 했으나 대조국전쟁으로 중단되었고, 훗날 네메노프가 포위된 레닌그라드에서 회수한 그 부품들이 실험실 2의 첫 사이클로트론으로 이어졌다.
전쟁기 네메노프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혁신을 멈추지 않았다. 레닌그라드에서 옮겨와 1944년 8월 가동된 사이클로트론 M-1은 극 직경 730밀리미터, 자석 무게 25톤이었고, 1944년 9월 25일 소련 최초로 중양자 빔을 장치 밖으로 인출했다. 이어진 1.5미터 사이클로트론(1947년 가동)에서 네메노프는 세계 최초로 1미터 두께의 물층과 붕소 흡수체로 방사선을 차폐하는 완전 신뢰성의 생물학적 보호를 적용했고, 중앙 제어반에서의 완전 원격 조종 역시 사상 처음 도입했다.
전후 그는 사이클로트론의 대량 보급과 국제적 확산을 이끌었다. 쿠르차토프의 지시로 사회주의 경제상호원조회의 회원국에 공급할 표준형 사이클로트론 U-120의 과학적 지도를 맡아, 루마니아·동독·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중국의 연구소에 이를 납품했다. 1960년 알마아타로 옮긴 뒤에는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과학아카데미 핵물리연구소의 1.5미터 사이클로트론 건설을 지휘하여 1965년 가동시켰고, 이를 재구축하여 소련 최초의 이온 에너지 조절식 등시성 사이클로트론으로 만들었다. 그는 평생 약 100편의 논문을 남겼으며, 유전체·반도체 물리와 핵물리, 가속기 기술을 아울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