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설계자에서 핵군축의 비판자로
그는 핵무기 경쟁을 두고 “폭탄 하나에도 쓸모를 찾지 못하겠다”고 썼다.
레프 페옥티스토프는 소련의 핵·열핵무기 개발을 이끈 이론물리학자이자, 훗날 핵군축과 원자로 안전을 주장한 과학자였다. 아르자마스-16에서 슬로이카를 바탕으로 한 열핵무기 연구에 참여했고, ‘제3의 아이디어’로 불린 2단계 설계의 돌파를 목격한 증언을 남겼다. 그는 무기 개발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핵실험과 군비경쟁의 무의미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았고, 말년에는 레이저 핵융합과 본질적으로 안전한 원자로를 연구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45–1951 과학·기술 · 소련 · 과학 · 원자력 · 우주 개발
경력 연표
- 1945–1951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물리학부에서 핵물리학 전공
- 1951–1955KB-11 이론부, 아르자마스-16 연구원
- 1955–1978VNIITF, 첼랴빈스크-70 이론물리학자
- 1966사회주의 노동 영웅, 소련 과학아카데미 회원
- 1978–1988쿠르чатов 원자력연구소 연구자, MEPhI 교수
- 1988–2002레베데프 물리학연구소 레이저 핵융합 부서장
- 2000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정회원
관련 역사 사건
1977년 서한과 군사 원자력에서의 이탈
페옥티스토프는 핵무기 개발의 성과를 부정하지 않았지만, 1970년대에 들어 군비경쟁 자체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 1977년 그는 중형기계제작상 에핌 슬라프스키에게 편지를 보내 소련이 핵무기 경쟁에서 얻을 이익이 없다고 주장하고, 국가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핵실험 중지를 선언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이것이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소련에 큰 이익이 된다고 보았다. 같은 시기 그는 연구 방향을 바꾸기로 결심했고, 핵무기 연구에서 물러나는 일은 그가 맡고 있던 핵심 연구소 부소장 자리 때문에 간단하지 않았다.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그를 놓아주지 않으려 했고, 결국 슬라프스키의 승인으로 모스크바로 옮겨 쿠르차토프 원자력연구소에서 일하게 되었다. 1978년 그는 ‘주제가 스스로 소진되었다’는 판단 아래 군사 원자력 연구를 떠났다.
이후 그의 연구는 원자로 안전 문제로 향했다. 체르노빌 사고를 계기로 그는 외부 제어 시스템이나 운전자 실수에 좌우되지 않고 물리적으로 안전이 보장되는 원자로, 이른바 내재적 안전성을 갖춘 원자로의 개념을 연구했다. 『스스로 소진된 무기』(1999)에서 그는 핵폭발의 결과를 직접 본 사람이 아니면 원자폭탄 사용을 제안할 수 없다고 썼다. 군사 원자력을 떠난 것은 단순한 이직이 아니라, 자신이 참여해 만든 무기 체계의 의미를 스스로 문제 삼은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