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분열과 핵이성질체를 탐구한 실험물리학자
1935년 브로민의 방사능을 연구하던 그는 쿠르차토프 형제·미솝스키와 함께 원자핵 이성질체 현상을 발견했다.
레프 루시노프는 레닌그라드 물리기술연구소에서 핵물리학의 실험 기반을 넓힌 소련의 물리학자였다. 그는 1939년 게오르기 플료로프와 우라늄 핵분열에서 한 번의 분열마다 둘 이상의 중성자가 나온다는 사실을 입증해 연쇄반응 조건을 밝히는 데 기여했다. 동시에 인공 방사성 핵의 이성질체와 중성자·감마선의 상호작용을 연구했으며, 전후에는 연구용 원자로 건설과 핵물리학 연구 집단의 조직을 이끌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26–1930 과학·기술 · 소련 · 과학 · 원자력 · 우주 개발
경력 연표
- 1926–1930레닌그라드 공과대학 물리기계학부 학생
- 1930–1944레닌그라드 물리기술연구소 쿠르차토프 연구실 연구자
- 1939–1940플료로프와 우라늄 핵분열 중성자 실험 수행
- 1944핵이성질체 연구로 물리·수학 박사학위 취득
- 1948실험물리학 교수
- 1946–1960소련 원자 프로젝트 및 연구용 원자로 개발 참여
- 1950s고중성자 특성 연구용 원자로 프로젝트 과학책임자
관련 역사 사건
전후 연구용 원자로 건설과 실험 기반의 확장
전쟁이 끝난 뒤 루시노프의 활동 중심은 레닌그라드의 실험 기반을 넓히는 일로 옮겨갔다. 그는 물리기술연구소에 물-물형 연구용 원자로를 세우자고 제안한 발의자였고, 원자로 건설 분야의 작업에 곧바로 뛰어들었다. 그의 발의로 양산형 원자로 설계가 개편되었고, 중성자 특성이 높고 실험 연구의 폭이 넓은 현대적 원자로 설계가 만들어졌으며, 그는 그 설계의 과학적 책임자가 되었다. 설계와 건설, 물리 실험, 원자로 시운전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그는 연구와 작업을 지도하면서 창조적인 참여를 계속했다. 1954년에는 물리기술연구소에 2메가와트 출력의 연구용 원자로, 이른바 'R 장치'를 세우기로 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전후 그는 원자핵 이성질체 연구도 이어갔다. 1947년부터 1949년까지는 아르카디 카라먄과 함께 핵이성질체 분리 방법을 개발하고 그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그는 실험실 차원의 연구에 그치지 않고 인재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그가 이끈 집단은 원자로와 관련된 과학적 기술적 문제들을 해결해 냈고, 여러 물리학자에게 연구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오랜 방사성 물질 취급이 몸에 남긴 영향 속에서 그는 1960년 5월 18일, 쉰세 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유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보고슬로프스코예 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