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루이

李锐

루산에서 마오에 맞선 비서, 『루산 회의 실록』을 쓰고 당내 민주를 외친 당사 연구자

후난 핑장 출신으로 우한대학 재학 중 1937년 공산당에 들어가 옌안에서 청년·언론 사업을 했고, 1943년 정풍의 「구조 운동」 때 특무 혐의로 1년 넘게 갇혔다. 건국 뒤 수리부에 들어가 1958년 최연소 부부장이 되었고, 싼샤 댐에 반대하는 논리로 마오의 눈에 들어 공업 담당 겸임 비서가 되었다. 1959년 루산 회의에서 대약진을 비판하고 펑더화이를 고발하기를 거부해 당적을 잃고 헤이룽장의 노동 수용소로 보내졌으며, 문화대혁명 때 친청 감옥에서 8년을 독방에 갇혔다. 마오 사후 복권되어 전력공업부 부부장, 중앙조직부 상무부부장을 지냈다. 은퇴 뒤 마오와 당사를 다룬 책을 쓰며 언론 자유와 당내 민주를 주장했고, 2019년 101세로 숨졌다.

다른 이름: 이예 · 리허우성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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