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카를루스 프레스테스

Luís Carlos Prestes
브라질 브라질 1898–1990 ○ 자연사

희망의 기사: 2만 5천 km를 행군한 브라질 혁명가

많은 사람들이 내가 미쳤다고 생각한다. 대개 나이가 들면 제정신을 찾는다. 젊을 때는 혁명가였다가 결혼하고 가족을 부양하며 정착하지. 그러나 나는 이 나이에 이르도록 아직 제정신이 들지 않았다. — 1984년 인터뷰에서

브라질 혁명가·정치인. 1925~1927년 '프레스테스 종대'를 이끌고 내륙 2만 5천 km를 행군해 '희망의 기사'라 불렸다. 1935년 코민테른 집행위원, ANL 봉기 지도 후 9년간 수감. 1943년부터 37년간 브라질 공산당 사무총장으로 노동운동과 반독재 투쟁을 지휘했고 쿠데타 후 망명 중에도 당을 이끌었다. 유럽공산주의 전환을 거부해 축출됐으나 끝까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를 고수했다.

경력 연표

올가 베나리우: 희망의 기사와 독일 혁명가

1934년 말, 코민테른은 독일 출신의 젊은 공산주의자 올가 베나리우(1908~1942)에게 브라질로 귀국하는 루이스 카를루스 프레스테스의 경호 임무를 맡겼다. 두 사람은 포르투갈인 부부로 위장해 대서양을 건넜고, 그 위장은 현실이 되어 사랑에 빠졌다. 1935년 11월 ANL 봉기가 진압된 후, 두 사람은 1936년 1월 경찰에 체포되었다.

임신 7개월이던 올가의 신병을 둘러싸고 국제적 구명 운동이 일어났으나, 제툴리우 바르가스 대통령이 직접 그녀의 추방령에 서명했다. 한때 프레스테스 종대의 동지였던 필린투 뮐레르 경찰청장은 게슈타포와 손잡고, 구조를 막기 위해 중간 기항 없는 직항로로 그녀를 독일로 보냈다. 1936년 11월 베를린 바르님슈트라세 교도소에서 딸 아니타 레오카지아를 출산했고, 국제적 압력으로 14개월 후 프레스테스의 어머니에게 아이가 인도되었다. 올가는 라벤스브뤼크 강제수용소를 거쳐 1942년 4월 베른부르크 안락사 센터에서 가스실로 살해되었다. 독일 유대인 태생의 공산주의자 올가와 브라질 혁명가 프레스테스의 비극은 파시즘에 맞선 국제적 연대의 상징이자, 그 연대가 국가권력 앞에서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보여주는 증언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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