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다노프의 심전도를 읽고 쓴 편지 한 통이 의사들 음모 사건의 불씨가 된 크렘린 심장 전문의
크렘린 주치의가 「내 말을 믿지 티마슈크 같은 사람 말을 믿겠느냐」며 그녀의 심근경색 진단을 묵살하자, 그녀는 상부에 편지를 썼고 4년 후 의사들의 음모의 불씨가 되었다.
1926년부터 크렘린 병원에서 근무한 심장 전문의로, 1948년 8월 28일 안드레이 즈다노프의 심전도를 판독하고 '심근경색' 진단을 내렸으나 상급 의사들에게 묵살당했다. 이에 당과 국가보안부에 세 차례 항의 편지를 보냈고, 4년 후 이 편지들은 1953년 '의사들의 음모' 사건 조작의 근거로 부활했다. 1953년 1월 '의사-살인자들을 적발한 공로'로 레닌 훈장을 받았으나 스탈린 사후 4월에 박탈당했고, 이후 흐루쇼프의 비밀연설에서 지목되며 '정보원'이라는 낙인이 평생 따라다녔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98브레스트리톱스크에서 하사관의 딸로 출생
- 1920사마라 의대 재학 중 발진티푸스·콜레라 방역에 동원
- 1926제1모스크바대 의대 졸업, 크렘린 병원(레치산우프르) 근무 시작
- 1943–1953NKVD-MGB 비밀정보원으로 활동
- 1948.8기능진단과장으로서 즈다노프의 심근경색 진단 후 상부에 항의 편지 발송
- 1953.1'의사-살인자 적발 공로'로 레닌 훈장 수훈, 전국적 영웅으로 부상
- 1953.4스탈린 사후 레닌 훈장 박탈, 이듬해 노동적기훈장 수훈
- 1964크렘린 병원 퇴직, 사망 시까지 명예 회복을 청원
즈다노프의 진료와 1953년 의사 사건
1948년 8월 말, 크렘린 진료기관 기능진단실장 티마슈크는 안드레이 즈다노프의 심전도를 판독하고 잠복성 심근경색이라고 진단했다. 주치의였던 심장 전문의 블라디미르 비노그라도프와 알렉산드르 바실렌코는 진단에 동의하지 않고 허혈성 질환의 악화라고 판단해 발다이 요양소에서 휴식과 장시간 보행을 처방했다. 즈다노프는 8월 31일 사망했다. 훗날 심전도를 재검토한 의료진은 심전도만으로는 한 가지 진단을 확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티마슈크의 의료 과실 주장은 그 자체로 입증된 사실이 아니다.
티마슈크는 8월 29일 크렘린 경비 책임자 니콜라이 블라시크에게 편지를 보내 주치의들이 즈다노프의 위중한 상태를 과소평가하고 있으며 현재의 처방이 치명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바쿠모프가 이 편지를 스탈린에게 보고했고, YIVO 백과사전에 따르면 스탈린은 1948년 8월 30일 이를 받아 9월 1일 개인 문서고에 넣었다. 티마슈크는 이후 중앙위원회에 세 차례 항의했으며, 첫 편지는 의료 전문가가 판단해야 한다는 이유로 진료기관장 표트르 예고로프에게 이관되어 보류되었고 후속 두 편지는 검토 없이 기록되었다. 문서고에 있던 편지는 1952년 12월 정치국 회의 뒤 다시 꺼내져 스탈린에게 전달되었다. YIVO는 스탈린이 이를 즈다노프 살해 혐의의 근거로 삼았다고 서술한다. 1953년 1월 언론은 이른바 의사들의 음모를 폭로했고, 유대인 의사들을 겨냥한 반유대주의적 정치 탄압이 뒤따랐다. 티마슈크가 처음 지목한 의사들은 유대인이 아니었으며, 그녀의 과실 혐의는 결정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그녀는 1966년 회고에서 자신이 의사들을 반역자로 여긴 적이 없고 정치적 음모의 전모를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