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뷔카르

Marcel Bucard

무솔리니의 자금으로 프랑시스트 운동을 세우고 대독 협력으로 총살된 파시스트

1933년 9월 29일 밤 11시 개선문 아래에서 열린 의식에서 그는 「권력 장악을 목표로 하는 혁명적 행동 운동」을 세운다고 선언했다. 「우리의 프랑시슴은 프랑스에게, 파시즘이 이탈리아에게 그러한 것이다」라고 그는 썼다

신학생으로 1차 대전에 동원되어 세 차례 부상하고 대위가 되었다. 악시옹 프랑세즈와 전국가톨릭연맹을 거쳐 1925년 조르주 발루아의 르 페소에 들어가 1926년부터 선전을 맡았고, 1927년 발루아와 갈라선 뒤 코티의 《라미 뒤 푀플》에 글을 썼다. 1933년 9월 이탈리아 파시즘을 본뜬 프랑시스트 운동을 세웠다. 운동은 무솔리니 정부의 자금을 받았고 1934년 2월 6일 시위에 참가했으며 1936년 인민전선 정부에 금지되었다. 금지 뒤 공공연한 반유대주의로 돌아섰고 1941년 프랑시스트당을 재건해 대독 협력에 나섰다. 1945년 이탈리아에서 체포되어 1946년 3월 샤티용 요새에서 총살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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