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솔리니의 자금으로 프랑시스트 운동을 세우고 대독 협력으로 총살된 파시스트
1933년 9월 29일 밤 11시 개선문 아래에서 열린 의식에서 그는 「권력 장악을 목표로 하는 혁명적 행동 운동」을 세운다고 선언했다. 「우리의 프랑시슴은 프랑스에게, 파시즘이 이탈리아에게 그러한 것이다」라고 그는 썼다
신학생으로 1차 대전에 동원되어 세 차례 부상하고 대위가 되었다. 악시옹 프랑세즈와 전국가톨릭연맹을 거쳐 1925년 조르주 발루아의 르 페소에 들어가 1926년부터 선전을 맡았고, 1927년 발루아와 갈라선 뒤 코티의 《라미 뒤 푀플》에 글을 썼다. 1933년 9월 이탈리아 파시즘을 본뜬 프랑시스트 운동을 세웠다. 운동은 무솔리니 정부의 자금을 받았고 1934년 2월 6일 시위에 참가했으며 1936년 인민전선 정부에 금지되었다. 금지 뒤 공공연한 반유대주의로 돌아섰고 1941년 프랑시스트당을 재건해 대독 협력에 나섰다. 1945년 이탈리아에서 체포되어 1946년 3월 샤티용 요새에서 총살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33–1944 정치·당 지도 · 프랑시스트 운동
- 1925–1927 정치·당 지도 · 르 페소
- 1914–1918 군사·지휘 · 프랑스 국가기관
경력 연표
- 1895.12.07생클레르쉬레프트 출생
- 1914–1918신학생으로 동원되어 대위까지 진급, 세 차례 부상
- 1924국민블록 후보로 하원 선거 낙선
- 1925–1927르 페소 가입, 1926년부터 선전 책임자
- 1927–1933《라미 뒤 푀플》 재향군인 면 담당
- 1933.09.29프랑시스트 운동 창설
- 1934.02.062월 6일 시위 참가
- 1934.12몽트뢰 국제 파시스트 대회 참가
- 1936인민전선 정부의 동맹 금지로 운동 해산
- 1941–1944프랑시스트당 재건, 대독 협력
- 1944.08독일로 도주
- 1945.06메라노에서 체포되어 프랑스로 인도
- 1946.02.21센 법원에서 사형 선고
- 1946.03샤티용 요새에서 총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