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데아

Marcel Déat

「질서·권위·민족」을 내걸고 사회당을 떠나 대독 협력 정당 국민민중연합을 세운 신사회주의자

1939년 5월 4일 《뢰브르》의 기사에서 그는 폴란드 친구들과 함께 우리 영토를 지키는 전망이라면 용감히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쓴 뒤 이렇게 맺었다. 「그러나 단치히를 위해 죽는 것, 그것은 안 된다!」

게리니에서 태어나 고등사범학교에 들어간 1914년 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SFIO)에 입당했고, 1차 대전을 대위로 마친 뒤 철학 교수 자격을 얻었다. 1932년 파리 20구에서 자크 뒤클로를 꺾고 하원의원이 되었으나, 계급투쟁 대신 계급 협력과 권위적 계획 국가를 내건 신사회주의 노선 때문에 1933년 11월 당에서 제명되었다. 1936년 초 사로 내각의 공군장관을 지냈고, 1939년 5월 단치히를 위해 죽을 수 없다는 기사로 이름을 알렸다. 점령기인 1941년 2월 대독 협력 정당 국민민중연합(RNP)을 세웠고 1944년 3월 라발 정부의 노동장관이 되었다. 해방 뒤 궐석으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이탈리아의 수도원에 숨어 지내다 1955년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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