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퓌조

Maurice Pujo

카믈로 뒤 루아를 만들고 30년 동안 이끈 악시옹 프랑세즈의 공동 창립자

1934년 1월부터 그는 스타비스키 사건을 내건 파리의 반의회 시위를 이끌었다. 그러나 2월 6일 저녁에는 현장에 오래 머물지 않았고, 사망자를 낸 총격 이틀 뒤에는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1872년 센에마른에서 태어나 독일 철학에 기운 문필가로 출발했다. 드레퓌스 사건 중이던 1898년 앙리 보주아와 함께 드레퓌스 옹호로 돌아선 지식인 모임을 떠나 「악시옹 프랑세즈」라는 말을 처음 내건 글을 썼고, 이듬해 운동 창립에 참여해 모라스의 영향으로 왕당파가 되었다. 1908년 일간지 《악시옹 프랑세즈》를 공동 창간하고 11월 청년 행동대 카믈로 뒤 루아를 만들어 1930년대까지 지휘했으며, 1934년 1~2월 스타비스키 사건 시위를 이끌었다. 점령기에는 리옹에서 모라스와 신문을 내며 비시를 지지했고, 1945년 1월 징역 5년과 공민권 박탈을 선고받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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