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주의
Monarchism
한 사람의 군주가 국가 권위의 근원이 되는 군주제를 옹호하거나 그 존속·복고를 주장하는 정치 입장과 운동이다. 특정 군주가 아니라 제도 자체를 지지하는 군주주의와, 특정 군주나 왕가를 지지하는 왕당파가 구별되기도 한다. 계몽주의와 미국·프랑스 혁명이 군주제를 흔든 뒤 정치 운동으로 뚜렷해졌고, 신권 군주제·절대군주제·입헌군주제 가운데 무엇을 지지하는지, 어느 왕가를 정통으로 보는지에 따라 갈렸다. 프랑스의 정통왕조파, 스페인의 카를로스파, 1917년 이후 러시아 망명 군주파, 1921년 헝가리 정통주의자, 중국의 보황회와 장쉰의 복벽 등이 그 예다.
상세
정의와 갈래
프랑스어권 정의에서 군주주의는 한 사람이 국가 권위의 근원이 되는 통치 형태, 곧 군주제를 지지하는 정치 교의이자 그 지지자들의 견해를 가리킨다. 군주를 세우는 방식이 꼭 세습일 필요는 없어서 신성 로마 제국 황제나 폴란드 왕처럼 선출 군주도 있었다. 영어권 정의는 특정 군주와 상관없이 제도를 지지하는 사람을 군주주의자, 특정 군주를 지지하는 사람을 왕당파로 구분하며, 군주제에 대한 반대를 공화주의라 부른다. 군주주의 안에서는 모든 권위가 신에게서 온다고 보는 신권 군주제, 군주가 모든 권력의 원천이라는 절대군주제, 헌법이 군주의 대권을 정하고 제한하는 입헌군주제, 정부가 의회에만 책임지고 군주는 당파를 떠나 도덕적 권위를 행사하는 의회군주제가 구별된다. 따라서 군주주의자들은 어떤 군주제를 원하는지, 그리고 어느 왕가를 정통으로 보는지에 따라 자주 서로 맞섰다.
혁명에 맞선 왕당파: 프랑스와 스페인
17~18세기 계몽주의는 반군주제 사상을 낳았고,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은 유럽 군주제의 힘을 약화시켰다. 프랑스의 정통왕조파는 1830년 루이 필리프의 집권에 반대해 생겨났으며, 부르봉 왕가 장자 계통인 샤를 10세와 그 후손 샹보르 백작을 정통 왕으로 받들었다. 7월 왕정 초기에는 정통왕조파 의원 53명이 충성 서약을 거부하고 사퇴했다. 정통왕조파는 오를레앙파, 보나파르트파와 대립했고, 1883년 샹보르 백작이 죽자 대부분의 왕당파는 오를레앙 왕가의 왕위 요구자에게로 옮겨 갔다. 1883년 이후 오를레앙파의 교의는 샤를 모라스의 통합 민족주의로 바뀌어 갔고, 남은 정통왕조파는 모라스의 왕조 선택과 합리주의적·민족주의적 철학 때문에 그에게 적대적이었다. 스페인의 카를로스파는 19세기 초 왕위 계승 분쟁에서 생겨나 돈 카를로스 계통을 왕으로 세우려 했고, 자유주의에 맞서 여러 차례 카를로스 전쟁을 일으켰으며, 스페인 내전에서는 국민파의 일부로 싸웠다.
1917년 이후의 복고 운동
러시아에서는 1880년대부터 군주주의 정치조직이 나타났고, 1905~1917년에 전제정 유지를 내건 러시아인민연맹과 입헌군주제를 지지한 10월 17일 동맹이 생겼다. 1917년 혁명으로 군주제가 무너진 뒤 군주주의 조직은 금지되었고, 많은 활동가가 내전에서 죽거나 망명했다. 그 뒤에도 1921년 말~1922년 초 체카-국가정치보안부가 지하 ‘중앙러시아 군주주의 조직’을 무력화했고, 극동에서는 1930년대까지 군주주의 부대가 소비에트 정권에 맞서 유격전을 벌였다. 망명 군주파는 1924년부터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을 지지한 ‘키릴파’, 국가 형태를 ‘인민’이 정하게 하자는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 지지파, 새 러시아를 군주제 위에 세우려 한 ‘청년 러시아’로 나뉘었다. 헝가리에서는 1918년 카를 왕이 통치권 행사를 포기했으나, 1921년 3월과 10월 두 차례 정통주의자들의 지원을 받아 돌아와 왕권을 되찾으려 했다. 두 번째 시도에서 레하르 언털이 국방장관을 맡은 반정부를 세우고 오스텐부르크모라베크 줄러의 헌병대와 함께 부다페스트로 진군했으나, 10월 23일 부다외르시에서 호르티 정부군과 맞붙은 끝에 실패했다. 독일에서는 1920년대 독일국가인민당 주변에 호엔촐레른 왕정 복고를 요구하는 군주주의자들이 모였고, 이탈리아에서는 2차 대전 뒤 국민투표에서 근소한 차이로 공화정이 이겼다. 오스트리아 제헌의회는 합스부르크법으로 합스부르크 가문을 영구 추방했으며, 1974년에는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몰락과 함께 에티오피아 군주제가 폐지되었다. 스페인의 카를로스파는 1975년 프랑코 사후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즉위와 민주화 이행 속에서 급속히 쇠퇴했다.
동아시아의 군주주의
중국에서는 1898년 백일유신이 실패한 뒤 캉유웨이 등이 1899년 7월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보황회를 세웠다. 이 단체는 해외 화교를 모아 광서제를 복위시키고 청의 전제 제국을 입헌군주국으로 바꾸려 했다. 1912년 청이 무너진 뒤에도 복고를 바라는 이들이 남았고, 1917년 7월 1일 장쉰 장군의 군대가 베이징을 점령해 푸이를 다시 황제 자리에 앉혔으나 7월 12일 공화국 군대에 의해 뒤집혔다. 이 사건은 ‘만주 복벽’으로 불렸지만 가담자 대부분은 한족이었다. 일본에서는 1889년 메이지 헌법 아래 천황이 상당한 정치권력을 가졌고, 1947년 헌법은 천황을 국가와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규정했다.
마르크스주의의 분석과 다른 조류와의 관계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1852)에서 1848~1851년 질서당을 이룬 정통왕조파와 오를레앙파를 분석했다. 그는 두 분파를 갈라놓은 것이 백합 문장과 삼색기, 왕가의 차이만이 아니라 계급적 이해라고 보았다. 부르봉 왕가 아래서는 대토지 소유가, 오를레앙 왕가 아래서는 금융·대공업·대상업, 곧 자본이 통치했으며, 정통 왕정은 토지 귀족의 세습 지배를, 7월 왕정은 부르주아 벼락부자들의 지배를 정치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군주주의는 종교·전통·위계를 중시하는 보수주의와 자주 겹쳤지만 둘이 같지는 않다. 대중의 지지를 앞세운 보나파르트주의는 정통왕조파와 대립했고, 히틀러는 군주주의에 강하게 반대해 민족사회주의 정부가 오스트리아 합병 뒤 군주주의 활동을 억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