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nservatismus / conservatisme · 1790년대–현재

보수주의

Conservatism

기존의 사회 질서를 지키거나 이전 질서를 되살리려는 정신적·정치적 흐름을 묶어 부르는 말이다. 평화적 진화에 기댄 연속성과 역사적으로 자라난 전통을 중시한다. 자유주의·사회주의와 함께 18~19세기 유럽에서 개념화된 3대 정치 이념의 하나로,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반론에서 출발했으며 1790년대의 에드먼드 버크와 조제프 드 메스트르가 선구자로 꼽힌다. 국가를 질서의 중심에 두는 대륙 유럽형과 개인과 시장을 중시하는 영미형이 구분되고, 시기와 나라에 따라 신분적 보수주의, 국가 주도 사회정책, 시장 지향 보수주의 등 정책이 크게 다르다.

상세

정의와 기본 관념

독일어권 사전적 정의에서 보수주의는 기존 사회 질서의 보존이나 이전 질서의 회복을 목표로 하는 정신적·정치적 운동의 총칭이며, 그 밑에는 평화적 진화를 지향하는 정치적·정신적 연속성과 역사적으로 자라난 전통이라는 생각이 있다. 자유주의·사회주의와 함께 18~19세기 유럽에서 개념화된 3대 이념으로 꼽히지만, 완결된 정치철학이라기보다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의 태도에 가깝다는 평가도 있다. 영국의 R. J. 화이트는 보수주의가 정치 교의라기보다 정신의 습관, 느끼는 방식, 삶의 양식이라고 썼다. 흔히 거론되는 기본 입장은 인간 이성의 불완전성에 대한 인식, 추상적 체계보다 역사에서 얻은 경험, 역사적으로 자라난 사회의 다양성, 조상의 무의식적 지혜로서의 전통, 인간의 자연적 불평등을 고려한 권위, 시민적 자유와 사유재산의 결합이다. 이름은 라틴어 conservare(보존하다)에서 왔다. 독일어권 연구는 그 정치적 기원을 근세 초 신분 세력이 절대주의 국가의 권력 요구에 맞선 투쟁에서 찾으며, 처음에는 귀족과 전통적 지역 지도층이 이를 떠받쳤다고 본다. 판아요티스 콘딜리스는 보수주의를 단순한 반동이 아니라 시민사회(societas civilis) 사상 세계의 재정식화로 해석했다. 프랑스어권에서는 종교개혁 뒤 사회적 조화와 공동선을 위한 절제를 내세운 영국 국교회 신학자 리처드 후커에게서 보수적 성향의 더 이른 출발을 찾기도 한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응답

보수주의의 첫 강령적 저술들은 프랑스 혁명과 그 결과에 대한 비판 속에서 나왔다. 1790년대의 에드먼드 버크와 사보이아 출신의 조제프 드 메스트르가 서구 보수주의의 선구자로 꼽힌다. 버크는 사회를 세대를 잇는 유기적 전체로 보았고, 추상적 ‘이성’보다 여러 세대의 지혜가 쌓인 전통을 더 단단한 기초로 여겼다. 그러면서도 그는 변화의 수단이 없는 국가는 자기 보존의 수단도 없다고 썼다. 독일어권에서는 스위스의 국법학자 카를 루트비히 폰 할러(1768~1854)가 또 하나의 뿌리로 꼽힌다. 루이 드 보날은 1796년 『정치·종교 권력론』에서 절대군주제, 세습 귀족, 가정 안의 가부장 권위를 프랑스 보수주의의 원리로 내세웠다. 나폴레옹 시대가 끝난 뒤 빈 회의는 혁명이 풀어놓은 자유주의·민족주의 세력을 억누르려는 보수 반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1818년 샤토브리앙은 신문 《보수주의자》 창간에 참여했다. 러시아에서는 1833년 교육부 장관 세르게이 우바로프가 ‘정교·전제·민족성’의 3원칙을 내놓았다. 독일어권 연구는 보수주의와 반동을 구별하기도 한다. 역사가 클라우스 엡스타인은 현상 유지 보수주의와 개혁 보수주의를 황금시대의 부활을 바라는 반동과 나누었다.

19세기의 보수 정당과 국가

‘보수’라는 정치 용어는 1800년 무렵 영국과 프랑스에서 생겼고, 1832년 영국 토리당이 보수당으로 이름을 바꾼 뒤 1830년대 초부터 독일에서도 쓰였다. 프로이센에서는 1848~1849년 혁명 과정에서 보수 단체와 의원들이 모여 처음 보수 정당을 이루었고, 1918년까지 제국의회에는 엘베강 동쪽 농업 이익을 대표한 독일보수당, 고위 귀족과 산업계가 뒷받침한 자유보수당, 1871년부터의 중앙당이 있었다. 비스마르크는 사회주의자 탄압법으로 사회민주당을 금지하는 한편 노동자를 위한 질병·재해·노령 보험을 도입했다. 영국 보수당은 1846년 곡물법 폐지를 둘러싸고 갈라졌고,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한 국민’ 토리주의에서 온정주의적 보수주의가 독자적 이념으로 처음 등장했다. 디즈레일리는 1845년 보수당 정부를 ‘조직된 위선’이라 부르기도 했다.

20세기: 권위주의 우파와 전후 재편

보수주의와 파시즘은 민족주의라는 가치와 공산주의라는 적을 공유했지만, 영어권 개관은 권위주의 보수주의의 전통적·엘리트적 성격과 파시즘의 혁명적·대중주의적 성격이 대비되었으며 권위주의 보수 정권이 파시즘·민족사회주의 운동을 억누르는 일도 흔했다고 서술한다. 독일에서는 1929년부터 독일국가인민당 대표 알프레트 후겐베르크가 히틀러의 부상을 도왔고, 일부 보수주의자는 민족사회주의 체제에 적응했으며 다른 이들은 망명하거나 1944년 7월 20일 거사 같은 저항에 가담했다. 1945년 뒤 독일 보수주의는 대체로 민주적 법치국가를 받아들였고, 기독교민주연합이 가톨릭과 개신교의 보수 세력을 통합했다. 일본에서는 1955년부터 보수 정당인 자유민주당이 집권당 자리를 지켰다. 1950년대 미국의 보수 운동은 ‘신 없는 공산주의’를 막기 위한 단결을 내세웠고, 1980년대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정부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따라 국유 자산을 매각하고 복지 정책을 되돌렸다. 영국 보수당 안에서는 시장 지향의 대처주의와 케인스주의적·사회국가적 ‘한 국민’ 보수주의가 맞서 왔다.

대륙형·영미형과 사회주의와의 관계

연구자들은 대륙 유럽 보수주의와 영미 보수주의를 국가와 개인에 대한 평가로 구분한다. 대륙형에서 국가는 정치권력과 결정의 ‘자연스러운’ 자리이자 사회적 책임을 지는 주체였던 반면, 영미형에서는 개인이 질서를 세우는 중심에 서고 국가는 익명의 권력과 부자유의 화신으로 여겨졌다. 보수주의는 혁명 이후 자유주의, 초기 입헌주의, 급진 민주주의와 함께 사회주의를 주요 상대로 삼았다. 사유재산을 옹호하는 점에서 보수·고전적 자유주의 정당은 공동 소유나 소유자 책임 규제를 주장하는 공산주의·사회주의·녹색 정당과 대립한다고 정리된다. 다른 한편 비스마르크의 사회보험은 ‘국가사회주의’로 불렸고, ‘한 국민’ 보수주의는 사회국가를 받아들였다.

관련 인물

출처

  1. de.wikipedia.org
  2. fr.wikipedia.org
  3. 위키백과 (영문)
  4. 위키백과 (러시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