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호 쿠스티 파시키비

Juho Kusti Paasikivi

겨울전쟁 직전 모스크바 협상에서 스탈린과 마주 앉은 핀란드의 현실주의 외교관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모든 지혜의 시작이다: 스탈린에게서 빌려와 평생의 외교 원칙으로 삼은 말.

러시아 제국의 대공국 시절부터 시작해 핀란드 독립·내전·겨울전쟁·계속전쟁·냉전을 모두 통과한 정치가다. 독립 직후인 1918년 첫 총리를 지내며 친독일·군주제 노선을 밀었고, 1920년 타르투 조약으로 소비에트 러시아와 국경을 확정했다. 1939년 가을 스톡홀름 주재 공사에서 소환되어 모스크바에서 스탈린·몰로토프와 직접 협상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전쟁이 터지자 무임소장관으로 평화조약 체결을 이끌었다. 1946년 대통령에 오른 뒤로는 '현실 인정이 지혜의 시작'이라며 소련과의 지정학적 공존을 추구했고, 이 파시키비 독트린은 냉전기 핀란드 외교의 근간이 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14~1939년: 은행가와 우익 정당 지도자

1914년 재무원장직과 의원직을 내려놓은 파시키비는 1934년까지 칸살리스-오사케-판키(KOP) 은행의 총지배인으로 일하며 핀란드 경제계의 중심 인물로 남았다. 같은 시기 헬싱키 시의회 의원(1915~1918)을 지냈고, 1918년 총리로 내각을 이끌었다가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자 군주제 계획이 무산되고 은행으로 돌아갔다.

정치적으로는 확고한 보수파로서 사회민주당원의 내각 참여와 공산주의자의 의회 진출에 반대했다. 1929~1932년 좌파에 대한 강경 조치를 요구하던 준파시즘 성향의 라푸아 운동을 잠정적으로 지지했으나, 이 운동이 과격해져 전 대통령 스톨베리까지 습격하고 만츠알레 반란으로 이어지자 다른 지지자들과 함께 등을 돌렸다.

1934년 국민연합당 의장에 오른 그는 라푸아 운동 및 만츠알레 반란과의 의혹 어린 관계로 훼손된 당의 명성을 민주주의 옹호의 노선으로 회복시켰다. 아내 안나가 1931년 세상을 떠난 뒤 1934년 알리 발베와 재혼하고 정계에서 물러났으나, 곧 스웨덴 주재 공사라는 핀란드에서 가장 중요한 외교 보직을 맡도록 설득되었다. 이 은행·정당 시기는 그가 후일 '현실 인정'의 외교로 나아가는 배경이자, 좌파 탄압과 의회 민주주의 옹호가 한 인물 안에서 교차한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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