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회의 뒤 「메테르니히 체제」로 혁명을 억누르다 1848년 3월 빈 봉기로 쫓겨난 오스트리아 국가재상
라인란트의 메테르니히 가문에서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나 스트라스부르와 마인츠에서 공부했다. 1809년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이 되었고, 빈 회의에서 오스트리아 대표단을 이끌어 나폴레옹 이후의 유럽 질서를 짰다. 1821년부터 1848년까지 국가재상을 지내며 「메테르니히 체제」로 러시아·프로이센과 손잡고 혁명과 민족 운동을 억눌렀고, 1819년 카를스바트 결의로 독일의 대학과 언론을 단속했으며, 국내에서는 검열과 첩자망을 썼다. 1848년 3월 13일 빈 봉기 때 루트비히 대공의 요구로 사임하고 런던으로 망명했다. 런던·브라이턴·브뤼셀을 거쳐 1851년 빈 궁정으로 돌아와 프란츠 요제프에게 조언했고, 1859년 86세로 죽었다.
다른 이름: 클레멘스 벤첼 폰 메테르니히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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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1848
외교·국제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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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1–1848
정부·행정
경력 연표
- 1809–1848오스트리아 외무장관
- 1814–1815빈 회의 오스트리아 대표단장
- 1821–1848오스트리아 국가재상
- 1848–1851런던·브뤼셀 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