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드미트리예비치 밀리온시코프

Михаил Дмитриевич Миллионщик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13–1973 ○ 자연사

핵무기를 만들고 핵군축을 외친 과학자-정치가

1968년 국제 파그워시 운동 의장으로 선출된 그는 소련 과학자의 입장에서 핵군축을 주창했지만, 동시에 쿠르차토프연구소에서 핵무기용 우라늄 농축 원심분리기 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소련의 물리학자이자 과학행정가. 그로즈니 출신으로 쿠르차토프 원자력연구소에서 기체 원심분리법에 의한 우라늄 농축 기술을 개발해 소련 핵무기 계획에 결정적 기여를 했으며, 세계 최초의 핵반응로-변환기 '로마시카'(1964)의 과학적 책임자였다. 1962년 과학아카데미 부총재로 선출되어 사망할 때까지 소련 과학의 제도적·국제적 좌표를 설정했고, 1964년부터 소비에트 파그워시 위원회 의장을 맡아 1968~1969년 국제 파그워시 운동 의장으로서 핵군축과 과학 협력에서 소련을 대표했다. 쿠르차토프연구소 부소장으로 핵기술 개발을 지휘하면서도 1967년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에 선출되어 과학자와 정치가를 겸한 독특한 경력을 남겼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그로즈니의 유전 기술자에서 난류 이론가로

미하일 밀리온시코프는 1913년 1월 테레크주 그로즈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밀리온시코프는 블라디카프카스 철도 그로즈니 역 기관차 차고의 선반공이었다. 그는 1932년 그로즈니 석유연구소를 시추기사 전공으로 졸업하고 그 연구소의 조교로 남아 고등수학과 시추, 이론역학을 가르쳤다. 1934년 모스크바 항공대학으로 옮겨 항공기 공기역학을 강의했고, 1943년까지 비행기·헬리콥터 제작학부 학장 대리를 지냈다. 1939년부터는 중앙유체역학연구소의 고속실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이후 자신의 과학적 명성을 세울 난류 이론과 응용 기체역학 연구에 들어갔다. 콜모고로프와 유리예프의 제자였던 그는 등방성 난류 이론을 발전시켜 난류 맥동의 감쇠 법칙을 정식화했고, 등방성 난류 현상에서 관성항의 역할을 처음으로 규명했다. 유전 분야에서도 유정에 지하수가 솟는 현상의 이론을 세우고 유층 개발의 새 방식을 제안했으며, 천연가스의 잉여 압력으로 전력을 얻는 방안과 가스 이젝터 연구를 남겼다. 1940년대 중앙유체역학연구소에서 수행한 관로 내 기체 흐름 연구는 장거리 가스관 계산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고, 초음속 제트 노즐 설계에도 응용되었다. 1944~1949년에는 소련 과학아카데미 역학연구소의 과학담당 부소장을 맡았고, 1946년 기술과학 박사 학위와 1949년 교수 칭호를 받았다. 1949년 제1총국 제813콤비나트의 과학담당 부지도자로 임명되면서 그의 연구는 우라늄 농축과 원자로 건설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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