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주둔 소련군 총사령관이자 아프가니스탄 작전을 지휘한 대장
전차군 사령관 리발코가 부상당한 자이체프 대위의 병실을 찾았다. "자네, 아직 한참 더 싸워야 하네." 그리고 자신의 권한으로 붉은기 훈장을 수여했다. 소련영웅 칭호는 40년 뒤에야 따라왔다.
위대한 조국전쟁에 자원입대해 쿠르스크에서 프라하까지 싸운 전차부대 장교로, 전후 기갑군 사령관과 벨로루시 군관구 사령관을 거쳤다. 1980년부터 1985년까지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최전선인 주동독 소련군(GSFG) 총사령관을 맡아 하급 장교의 주도성을 강조하는 훈련 개혁을 단행했고, 1983년 소련영웅 칭호를 받았다. 1985년 남부전략방향 총사령관으로 전임되어 아프가니스탄 내 소련군 작전을 지휘했으며, 산악전에 부적합한 BMP-1을 대체할 BMP-2의 대량생산을 중앙에 직접 요구해 관철시켰다. 2미터에 가까운 거구에 막강한 체력으로 '훈련장 장군'이라 불린 그는, 냉전 말기 소련 지상군의 작전 교리와 장비 현대화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41–1945 군사·지휘 · 소련 · 군사 · 국방
경력 연표
- 1941–1945자원입대, 전차여단·군단 참모 장교로 종전까지 복무, 6개 전투훈장 수훈
- 1945–1965공수·전차사단 참모, 육군참모대학 졸업(1965)
- 1965–1969제17근위전차사단장, 제120근위차량화소총사단장
- 1969–1972제5근위전차군 사령관
- 1972–1980벨로루시 군관구 제1부사령관, 이어 사령관(1976)
- 1980–1985주동독 소련군(GSFG) 총사령관, 육군대장 진급(1980), 소련영웅(1983)
- 1985–1989남부전략방향 총사령관, 아프가니스탄 작전 지휘
- 1989–1992국방부 감찰총감단, 퇴역(1992)
관련 역사 사건
1985~1989년 남부방향과 아프가니스탄
1985년 7월 6일 자이체프는 남부방향 총사령관이 되었다. 이 방향은 북카프카스·자카프카스·투르키스탄 군관구와 카스피 소함대를 묶은 편성이었고, 아프가니스탄 주둔 소련군이 그 책임 구역에 들어갔다. 지휘관들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제40군을 자주 찾았고 작전을 직접 지휘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군(軍) 안에서 그는 '훈련장 장군'으로 불렸고, 한 기록은 그의 훈련 방식이 적대 측에도 학습되었다고 전한다. 그가 주동독 소련군 사령관으로 있을 때 훈련 체계를 재편해 하급 장교의 독자적 판단에 무게를 두었고, 그에 맞춰 저항 세력 쪽 훈련 교관들이 프로그램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산악 지형은 장비 문제를 드러냈다. BMP-1의 무장은 그곳에서 무력했고, 자이체프는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직접 문제를 제기해 BMP-2의 대량생산과 아프가니스탄 파견을 서둘러 결정하게 했다. 포신의 고각 74도는 도로가 나 있는 협곡에서 산을 향해 사격할 수 있게 했고, 한 참전자는 저항 세력이 이 차량을 크게 두려워했다고 전한다. 한 쿠르간기계공장 관계자의 회고에 따르면 중앙위에서 온 통보 뒤 공장은 군사시대 체제로 전환해 두 주 안에 첫 차량을 보냈고, 4월에 25대를 출하했다.
이 시기의 자이체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한 참전자의 증언은 그가 지상에서 병력과 함께 있으면서도 작전이 준비되었는지, 손실이 얼마나 컸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반대로 부하 장교들은 지휘관이 지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에게서 배웠다고 회고하며, 한 동시대인은 산악 조건에서 통상 장비로는 어려움이 컸기 때문에 첨단 장비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실물 전시가 조직되었다고 전한다. 전쟁의 사망자와 부상자 수치는 공개 기록마다 다르며, 이 시기의 정치적 책임 문제는 오늘날까지 논쟁적이다.
1989년 1월 4일 자이체프는 소련 국방부 총감찰관단으로 옮겨 1992년 퇴역할 때까지 그곳에 있었고, 은퇴 후에는 러시아 전쟁·군복무 참전용사 위원회 이사로 활동했다. 1997년에는 자신의 출신지인 체르니 지역에서 편성된 제3근위전차군 부대를 기리는 전차 기념물이 그곳에 세워졌다. 그는 2009년 1월 22일 사망해 모스크바 트로예쿠롭스코예 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