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군 전시 치료 체계를 수립한 주임 내과의사, 그리고 '의사들 음모'의 첫 피고인
절단 수술 후 라포포르트가 문병하자 보브시가 말했다. '지금 내 상태를 그때와 비교할 수 있겠나? 이제 나는 다리만 잃었을 뿐 사람으로 남았지만, 거기서 나는 사람이기를 그만뒀네.'
소련군 주임 내과의사(1941~1950)로서 위대한 조국전쟁 시기 군대 전역의 치료 체계를 조직하고 전시 내과학의 기초를 세웠다. 1948년 살해된 솔로몬 미호엘스의 사촌으로, 1953년 1월 '의사들 음모' 사건의 수괴로 타스 통신에 지목되어 체포·고문당했다. 스탈린 사후 석방되어 보트킨 병원에서 임상과 연구를 재개했으며, 말기 육종으로 다리를 절단한 뒤에도 병원에 머물며 죽을 때까지 일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19– 군사·지휘 · 소련 · 군사 · 국방
경력 연표
- 1919모스크바대학 의학부 졸업, 붉은군대 입대
- 1919–1921제6페트로그라드 프롤레타리아 사단 연대 선임의사
- 1922–1935모스크바대학 내과 클리닉 연구원, 이후 의학생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 1935–1941중앙의사연수원 내과 주임·보트킨병원 치료과장
- 1941–1950붉은군대(이후 소련군) 주임 내과의사
- 1943의무부대 소장 진급
- 1948소련 의학아카데미 정회원
- 1953'의사들 음모'로 체포, 스탈린 사후 석방·복직
관련 역사 사건
전후의 학술·기관 활동과 가족에 미친 탄압
보브시는 종전 후에도 군의학의 성과를 정리하는 작업의 중심에 섰다. 그는 1941~1945년 전쟁기의 소련 의학 경험을 집대성한 다권 저작의 편집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군의학 백과사전』의 편집에도 참여했다. 임상 쪽에서는 잡지 『임상의학』의 편집자, 전소련 내과의학회 부회장을 맡았으며, 동시에 크렘린 병원의 자문의로 일하면서 정부 요인과 군 지휘관들을 진료했다.
바로 이 진료 경력이 1953년 '의사들 음모' 사건에서 그를 겨눈 근거가 됐다. 그는 1953년 1월 말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고, 반소련 테러 조직의 우두머리로 규정되었다. 스탈린 사후 사건이 종결되면서 1953년 4월 3일 다른 피고들과 함께 풀려나 직장에 복귀했다. 탄압은 그 자신에게 그치지 않았다. 부인 베라 보브시는 남편과 함께 체포되었고, 딸 류보비는 부모의 체포 때문에 직장에서 해고되었다가 뒤에 복직했다.
이 경험은 그를 전후 소련 의학계의 산 증인으로 만들었다. 석방 후 그는 보트킨 병원에서 임상과 연구를 이어갔고, 1959년 다리에 발생한 육종으로 절단 수술을 받은 뒤에도 병원에 남아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