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간 브레즈네프 시대 투르크메니스탄을 이끌며 면화·가스 경제를 통합한 공화국 지도자
1943년 2월 26일, 북서전선에서 상급병사 가푸로프는 총알이 다리를 꿰뚫고 파편 세 개가 오른팔을 찢는 중상을 입었다. 그 부상이 그를 교단에서 당 기구로 밀어 올린 인생의 분기점이었다.
차르조우 근처 마을의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교사로 출발한 투르크멘 당 간부로, 1941년 징집되어 북서전선에서 자동소총 분대장으로 싸우다 1943년 2월 중상을 입고 제대했다. 이후 콤소몰과 당 기구를 차근차근 올라 1963년 투르크멘 SSR 각료회의 의장 겸 외무장관이 되었고, 1969년 12월 공산당 제1서기에 올라 16년간 공화국을 이끌었다. 그의 재임기는 투르크메니스탄의 천연가스 개발과 관개 농업 확장이 본격화된 시기로, 공화국은 소련의 면화·에너지 경제에 깊숙이 편입되었으나 동시에 지역 간 파벌 경쟁과 족벌주의도 심화되었다. 1985년 12월 고르바초프가 면화 부패 스캔들을 이유로 그를 전격 해임했고, 이후 회고록을 집필하다 1999년 별장에서 세상을 떠났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69–1985 정치·당 지도 · 소련
경력 연표
- 1941차르조우주 8년제 학교 교사
- 1941–1943소련군 자동소총 분대장, 북서전선 참전, 중상으로 제대
- 1943–1944학교 교무주임·교장, 차르조우주
- 1944–1947차르조우 지역당 위원회 선전선동부장
- 1948–1951차르조우주 콤소몰 제1서기
- 1951–1955투르크멘 SSR 콤소몰 중앙위원회 선전선동 담당 서기
- 1959–1962차르조우주 당위원회 제1서기
- 1962–1963투르크메니스탄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
- 1963–1969투르크멘 SSR 각료회의 의장 겸 외무장관
- 1969–1985투르크메니스탄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
- 1971–1986CPSU 중앙위원회 위원 (1966–1971 후보위원)
관련 역사 사건
면화 부패 스캔들과 해임, 그리고 이후의 삶
1969년 12월 제1서기에 오른 가푸로프는 1985년 12월 21일까지 16년간 투르크멘 공산당을 이끌었다. 그의 재임기에는 가스·석유 부문에 대한 투자와 주민 생활 수준의 향상이 있었지만, 경제 운영에 대한 과도한 중앙집권적 통제와 거시적 관리 실패로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에는 대부분 부문에서 성장이 정체되었다. 족벌주의와 지역 간 파벌 경쟁, 부패도 이 시기에 더욱 커졌다.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당 총서기로 취임한 뒤, 가푸로프는 면화와 관련된 부패 스캔들을 이유로 해임되어 은퇴로 밀려났다. 연방 차원의 개인연금 수급자 신분이 된 그는 정치 무대로 돌아오지 않았고, 1980년대 후반에는 몇몇 하급 직책을 맡았다. 소련 시기에도 당과 투르크메니스탄 발전 문제를 주제로 여러 책과 글을 썼으며, 1990년대에는 회고록을 쓰기 시작했으나 1999년 7월 13일 미완성인 채로 사망했다. 사망 당시 그는 코페트다그 지역 베르젠기 마을의 자택에 있었다. 아들 바티르 한 명이 있었는데, 2015년 9월 61세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