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외교와 개인숭배를 결합한 루마니아 지도자
1968년 침공 비판은 동유럽 사회주의권 내부의 균열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1965년 루마니아 공산당 지도자가 되어 국가주의적 독자 노선과 강한 개인숭배 체제를 구축했다. 1968년 바르샤바 조약군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비판했으나, 1989년 혁명 속에서 정권과 함께 무너졌다.
경력 연표
- 1965–1989루마니아 공산당 서기장·국가 지도자
- 1968체코슬로바키아 침공 비판
- 1989루마니아 혁명으로 실각
관련 역사 사건
1980년대 긴축 정책과 개인숭배
차우셰스쿠의 1980년대 국내 통치는 극단적 긴축과 개인숭배로 정의된다. 1970년대 경제 성장은 서방으로부터의 대규모 차관(총 약 220억 달러)에 의존했으나, 1980년대 초 세계 경제 위기와 석유 가격 하락으로 상환 압박이 가중되었다. 차우셰스쿠는 1983년 국민투표를 통해 추가 대외 차입을 금지하고, 모든 부채를 조기 상환하겠다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도입된 긴축 정책은 루마니아 시민들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식량은 1인당 배급제로 전환되었고(달걀 5개, 밀가루·설탕 각 2파운드, 마가린 0.5파운드, 약간의 고기와 유제품) 휘발유는 월 30리터 쿠폰제로 제한되었다. 주택에는 방당 15와트 전구 하나만 허용되었고, 겨울철 냉장고 사용과 가스 난방이 금지되었다. 생산된 섬유의 14.6%, 신발의 11.6%, 휘발유의 6.3%만이 내수에 공급되었으며 나머지는 수출로 돌려졌다. 이러한 '합리적 분배'로 선전된 정책은 영양실조, 고립감, 암시장의 만연을 낳았다.
1989년 4월 루마니아는 약 210억 달러의 외채를 사실상 완제했다고 선언했으나, 그 대가는 참혹했다. 동시에 비밀경찰 세쿠리타테(Securitate)의 감시망은 시민 3명 중 1명이 정보원으로 등록될 정도로 확대되었고, '카르파티아의 천재' '다뉴브의 사상가' 등으로 차우셰스쿠를 신격화하는 개인숭배가 절정에 달했다. 긴축이 낳은 민중의 분노는 1989년 12월 티미쇼아라 봉기를 시작으로 혁명의 직접적 동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