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베르댜예프

Никола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Бердяев
소련 러시아 1874–1948 ○ 사망

마르크스주의를 떠나 기독교 실존주의의 자유 철학을 정립한 러시아 사상가

체카의 펠릭스 제르진스키에게 한밤중 심문을 받으면서도 "볼셰비즘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져 당당히 맞섰다. 제르진스키는 그를 석방했다 — "보라, '관점'을 가진 인간을."

마르크스주의에서 출발해 기독교 실존주의와 개인주의 철학을 정립한 러시아의 대표적 종교·정치 사상가다. 『이정표』(1909) 그룹의 주축으로서 혁명적 급진주의를 비판했고, 볼셰비키 집권 후 '자유 정신문화 아카데미'를 설립해 독립적인 철학 활동을 이어갔다. 1922년 '철학자의 배'로 소련에서 추방된 후 베를린과 파리에서 『러시아 이념』 『노예와 자유』 등 주요 저작을 집필했으며, 일곱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지명되었다. 신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비창조된 자유' 개념은 전체주의 비판과 실존주의적 정치신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모스크바의 자유아카데미와 독립적 철학 활동

베르댜예프는 1918년 초부터 자신의 집에서 매주 화요일 종교·철학 토론회를 열었다. 20~25명이 모여 발표를 듣고 토론한 이 모임에서 자유아카데미 구상이 나왔고, 1919년 그는 모스크바에서 자유정신문화아카데미를 조직해 의장을 맡았다. 아카데미 정관은 과학·철학·윤리·예술·종교 영역에서 정신문화와 사상을 연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강연, 세미나, 토론회, 도서관 운영과 출판을 계획했다. 운영비는 청중의 소액 회비에 의존했다. 모임은 여성고등과정 강당과 폴리테크닉박물관 등에서 열렸으며, 노동자와 적군 병사, 수병도 참석했다.

베르댜예프는 아카데미에서 역사철학과 종교철학 강좌를 맡고 도스토옙스키 세미나를 이끌었다. 1920년부터는 2주마다 문화와 철학의 위기, 기독교적 자유 등의 주제로 발표와 토론을 진행했다. 1922년 봄에는 세묜 프랑크와 함께 철학·인문학부를 조직했지만, 활동이 본격화되기 전에 중단되었다. 같은 해 8월 비영리 단체의 등록을 요구하는 조치가 공포된 뒤 아카데미는 재등록을 신청했다. 정부 기관들은 존속에 반대했고, 베르댜예프를 비롯한 일부 구성원의 추방 절차가 진행 중이었던 점도 등록 거부 사유가 되었다. 베르댜예프는 1922년 가을 추방되었고, 당국은 1923년 2월 아카데미 활동을 해산했다. 추방 뒤 베르댜예프와 다른 전 구성원들은 베를린에서 종교철학아카데미를 세워 강의와 토론 활동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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